[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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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the writer










   “여기 있었네?”

   당사자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가까이 다가온 수지 큐는 내게 가려져 있던 남자를 발견하자 어딘가 모르게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녀의 시선이 손을 들며 인사하는 남자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어쩐 일인지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잭은 술 마시면 안 된대요. 알고 있었어요?”
   돌덩이가 된 나를 제쳐놓고 남자가 경쾌한 말투로 나섰다.

   “면역 기능 때문에 당분간은요.”
   그렇게 대답하는 수지 큐의 말투는 심드렁했다.

   “그렇군요. 잭을 놀리는 건 그만하고 이만 가 볼게요.”
   남자는 발치에 내려놓았던 다른 맥주병을 주워들고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 오는 쪽으로 걸어갔다. 어쩐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이만 들어갈까? 좀 쌀쌀하네.”

   수지 큐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어깨를 움츠리며 팔을 감쌌다. 방으로 올라간 그녀와 나는 격정적으로 하고 또 했다. 그것은 하면 할수록 채워지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도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확인할 필요도 못 느낀 채 나는 이미 그 남자의 말을 사실로 믿고 있었다. 현기증이 일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급하게 이어졌다. 내가 지미의 쌍둥이라서 나랑 사귀는 건가? 꿩 대신 닭, 뭐 그런 거? 근데 릭이라고 했나? 그 자식은 왜 내게 그런 얘기를 한 거지? 늦게까지 쉽게 이루지 못한 잠은 동이 트는 것도 채 견디지 못하고 달아났다. 그 뒤를 쫓을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갑자기 심한 허기가 밀려와 다른 생각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여전히 깊게 잠들어 있는 그녀를 내버려둔 채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다행히 안면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아침잠이 필요 없는 노인들만 이른 시각의 레스토랑을 허전함으로부터 구하고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크루와상을 깨작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재수 없는 목소리가 머리 위로 들려왔다. 처음부터 정해진 자리인 듯 지미는 내게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맞은편에 앉았다.

   “아직은 카페인도 피해야 하는데.”
   “파우스트께서는 좀 닥쳐주시지.”
   “메피스토펠레스를 말하려던 거지?”

   지미가 잘난 입에 샐러드를 쑤셔 넣으며 따졌다. 그래, 저런 녀석을 좋아했단 말이지? 어쩌면 아직도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녀석이 나보다 잘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아직은 말이지. 그런데 앞으로는? 과연 내가 지미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지금도 딱히 죽을 만큼 열심히 사는 건 아닌데. 아니 애초에 따라잡는다는 게 뭘 뜻하는 거지? 학력? 경력? 재력?

   가뜩이나 우중충한 기분이 더없이 지저분하게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미는 왜 수지 큐를 거부했을까?

   “혼자 왔어? 수지 큐는?”

   때마침 지미가 물었다. 뭐가 궁금한 걸까. 머릿속으론 그녀의 벌거벗은 몸을 상상하고 있지는 않을까? 괜스레 그녀에 대한 배신감이 끓어올랐다. 알몸으로 지미에게 육탄 공세를 퍼붓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지미에게도 그렇게……. 그런데 왜 사귀지 않았을까?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자존심이 호기심을 가로막았다. 나는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넌 여자친구 없냐?”
   나는 심드렁한 말투로 포장해서 본질을 크게 우회하는 질문을 던졌다.
   “카사노바 짓 그만하고 엄마한테 손주라도 안겨 드리지그래?”

   “글쎄, 그건 네가 더 가능성이 클 거 같은데.”
   지미는 멋쩍게 웃으며 애꿎은 양상추를 포크로 쿡쿡 찔러댔다.
   “난 그쪽은 영 젬병이라.”

   “천하의 닥터 해든이? 내가 들은 정보와는 다른데?”

   내가 슬쩍 미끼를 던지자 지미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무슨 정보?”
   “뭐 인기 많은 거 같던데. 센터 여자들한테. 남자 몇몇하고.”
   “그럴 리가.”

   지미는 민망한 듯 웃고는 소문의 발화지로부터 멀어지려는 듯 의자 뒤로 몸을 뺐다.

   “대학교 이후로 누굴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어.”
   “나 때문에 말이지.”
   “그런 거 아니야.”

   지미는 한 차례 부정하고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올렸다. 시선을 여전히 내리깔고 있었지만 보고 있는 건 양상추와 아스파라거스와 견과류 따위가 아니었다. 지미는 과거를 보는 중이었다.

   “여자한테 크게 데였던 모양이군.”
   “뭐, 연애란 게 다 그렇지.”

   지미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여자애가 하나 있네.”
   “누구?”
   “왜 대학 들어가고 첫 여름방학 때 데려온 애 있잖아. 가슴 크고 몸매 죽이던 애.”
   “케이트.”

   지미는 단번에 전 여자친구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는 웃었다.

   “그 애랑도 끝이 좋진 않았지.”
   “그래? 어쩌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 지미는 혼자 쿡쿡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 시답지 않은 이유였지.”

   나는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며 무언의 재촉을 했다. 지미는 난감한 미소를 짓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닌데.”
   그렇게 운을 띄운 후 지미는 말을 이었다.

   “걔는 광공해라는 개념을 몰랐어.”
   “무슨 소리야?”
   “도시에서 별이 안 보이는 이유가 광공해 때문이라는 걸 이해 못 하더라. 오히려 어두운 곳을 밝게 하면 안 보이던 것도 더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게 헤어진 이유라고?”

   기가 차서 묻자 지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광공해 때문에 별빛이 가려지는 게 밝은 곳에서 꼬마전구를 켜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친절히 설명했는데도 그 애는 끝내 인정하지 않았단 말이지.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 알아? 그저 잔디밭에 누워서 별을 헤아리는 낭만을 내게 강요했다구.”
   “애초에 학교는 어떻게 들어온 거래?”
   “몰라. 기부 입학이겠지.”

   지미와 나는 동시에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며 대화에 쉼표를 찍었다.

   “그러니까 넌 얼굴이고 몸매고 다 상관없고 무식한 것만은 절대 안 된다 이거군.”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하지 마. 대화가 돼야 한다는 거지 그렇다고 얼굴하고 몸매가 아주 상관없다는 건 아니야. 들어 봐.”

   지미는 식탁 앞으로 바짝 몸을 당겼다.

   “연인들이 헤어지는 건 결국 다 그런 이유 때문이야. 정말 사소하고 소소한 이유들. 무슨 거창하게 가치관이나 정치관 차이 때문에 헤어지는 게 아니라구.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도 일상사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쓸데없는 물건을 사기당해서 사 오는 가족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소음 문제로 이웃과 싸우기도 한다고. 예수님도 변비로 고생할 땐 화장실에서 욕을 하셨을걸?”

   지미는 마지막 말을 의식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우리를 향한 시선은 하나도 없었다. 노화로 귀가 어두워지는 자연의 이치에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사랑과 연애는 일상의 영역에 있어. 일상사에서 개인이 매번 훌륭해지기란 불가능하지. 게다가 사랑이란 건 말이지…….”

   지미는 손가락 끝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잠시 뜸을 들였다.

   “사랑도 결국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 엔도르핀, 세로토닌 등의 호르몬 칵테일이 대뇌를 취하게 하는 것에 불과해. 그것도 길어야 2년에 불과하지. 유효 기간이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서는 게 사랑이라는 짧은 단어에 내포된 필연이야. 그런 화학 작용의 결과로 내가 누군가에게 끌리고 그리워하게 되는 거라면 사랑에 지금과 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게 타당할까? 화학 작용은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여자친구가 없는지 알 만하군.”
   “말했잖아. 사랑에는 소질 없다고.”

   지미가 사랑에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 하고는 별개로 생각해 볼 만한 얘기였다. 연인들은 영원한 사랑을 꿈꾸지만 그게 실제로 비일비재하다면 그런 사랑을 꿈꿀 일도 없을 것이다. 영화에 정의, 의무, 책임, 약속, 믿음, 진실, 가족애와 더불어 영원한 사랑이 걸핏하면 등장하는 건 그 개념들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할 뿐이다. 내가 수지 큐에게 어떤 이유로 끌렸든, 반대로 수지 큐가 내게 무슨 매력을 느꼈든 우리 앞에는 이별이 필연처럼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일상의 하잖은 이유로도 균열을 일으키는 게 연인을 붙여놓고 있는 빈약한 접착제인 사랑의 실체다. 그렇다면 수지 큐와 나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어야만 할까.

   지미가 수지 큐와 사귀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이 녀석은 바보니까. 그런데 수지 큐가 나를 사귀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녀와 사귀는 걸까. 그녀의 육감적인 매력에 끌려서? 그녀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데 헌신해서? 모르겠다. 대체 어떤 주문이 들어왔길래 그녀를 향해 호르몬 칵테일을 제조하게 한 걸까?

   “너랑 이런 대화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돼서 참 좋다.”

   지미가 말했다. 같은 고민이 머릿속에 겹겹의 메아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지미가 즉각 반응하며 걱정하는 기색을 띠었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시끄러워. 그냥 데자뷔야.”
   “자주 느껴?”
   “무슨 문제라도?”
   “문제까진 아니고, 돌아가거든 검사 좀 해 보자.”
   “문제가 아니라면서 검사는 또 뭐야. 적당히 해두라고, 미스터 미스토펠리스.”

   대화는 다른 사람들이 떼로 들이닥치며 중단되었다. 간밤의 그놈을 발견한 나는 전날 밤 내게 그런 말을 한 저의가 뭐냐고 따졌다. 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혹시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그 말이 반쯤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띠띠- 띠띠-
   때마침 알람이 울렸다. 운 좋은 녀석. 나는 마지막으로 을렀다.

   “기억이 안 난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요.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을 흠씬 두드려 팬 다음에 기억을 못 하면 어떨까?”

   놈은 겁에 질린 얼굴로 동료들이 모여 있는 자리를 향해 떠났다. 의자에 걸려 넘어질 뻔할 그 걸음은 어제와는 딴판이었다.







-계속











공지

  이번 포스팅에서 새로운 시험을 하나 해 볼까 합니다.

  스팀잇-라이프 밸런스는 많은 분이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포스팅-답글-방문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죠. 특히 답글의 경우는 댓글 주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하면 하나하나 대댓글을 다는 게 도리겠지만, 정작 그러다 보면 정작 이웃분들의 포스팅을 읽고 거기에 댓글을 다는 시간이 부족해지기 마련입니다. 답글을 모두 달지 못 했다는 이유로 다음 포스팅이 꺼려지는 경우도 있으니 스라밸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선착순, 선별, 랜덤...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하다 포털이나 페북 등에 게시되는 컨텐츠가 떠올랐습니다. 작성자에게 다는 댓글이 아닌, 컨텐츠에 대한 얘기를 유저들끼리 자유롭게 나누는 방식이라 무조건 정성 댓글을 달아야 한다는 부담에서도 해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포스팅에서 그런 방식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제가 아래 두 개의 댓글을 답니다. 여러분은 제 댓글 밑에 대댓글로 달아 주시면 됩니다. 하나는 지금까지처럼 소설 감상평을 남기는 용도고, 다른 하나는 오타/오기/오류 등의 제보 혹은 소설과 상관없이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을 때 사용하는 용도입니다. 저는 감상평에는 답글을 달지 않겠습니다. (물론 다 읽을 겁니다만)

  다른 유저가 남긴 댓글에도 부담없이 대댓글을 달 수 있는 분위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kimthewriter] 감상평은 이곳에 달아 주세요
     [김작가] 지미 좀 꼰대 같아요.
         ㄴ[김반장] 22222222
         ㄴ[김십장] 33333
         ㄴ[김통장]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잭이 더 꼰대 같죠. 융통성 없음요.
                  ㄴ[김사장] 잭은 젊꼰 지미는 그냥 꼰
                           ㄴ[김회장] 둘이 쌍둥인데요...
     [김소장] 이번 편 분량 훌륭합니다.
     [김원장] V의 날은 언제 나와요?
         ㄴ[김박사] 그걸 아직도 기다리고 계시다니...ㅠㅠ
         ㄴ[김석사] 이런 질문은 아래 댓글에 달아야 하지 않나요?
                  ㄴ[김원장] 아, 그런가요... 처음이라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ㄴ[김석사] 저도 몰라서 여쭤본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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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장] V의 날 언제 나와요?




    잘 모르는 분에게 대댓글을 다실 때는 오해나 감정 상할 만한 일이 생기지 않게 주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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