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별을 본다. 외롭지 않으려고. / 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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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the writer










   몹쓸 계획은 패터슨 센터의 탁상 어딘가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 연구원들의 노고를 달래고 동기를 고취하고 정체된 연구에 새로운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충전을 겸한 워크숍을 기획한 것이다. 지미의 팀을 비롯한 여러 연구팀이 사흘간의 워크숍을 위해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휴양지인 헌팅턴 비치로 떠났다. 그중에는 불청객이 하나 끼어 있었는데, 바로 나다.

   내가 그들의 워크숍에 따라가게 된 건 순전히 지미와 수지 큐의 농간이었다. 다른 연구원들도 그들의 가족과 연인을 동반하기는 했으나 강제로 그렇게 된 건 아니다. 내 경우는 강제였다. 거의 강제나 다름없었다. 지미는 나를 빼놓고는 자기 팀이 발표할 거리가 없다며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고, 심지어 계약서의 협조 의무 사항까지 들먹이며 엄포를 놓았다. 그건 치료에 들어가기 직전, 내 대리인이었던 엄마가 서명한 계약이었다.

   나는 거길 따라갈 기분이 아니었다. 초조감과 무력감을 한꺼번에 먹는 바람에 상태가 극도로 불안정했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남자답지 못한 짓이므로.

   처음에는 커피 트럭 일을 핑계로 마지못해 거절하는 전략을 썼다. 지미와 수지 큐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미는 파커 씨에게 전화해 주겠다며 나를 어린애로 전락시켰고, 수지 큐는 이 기회에 차라리 그만두라며 내가 하는 일을 폄하했다. 둘 중 먼저 싸운 쪽은 여자친구였다. 나 자신도 그 일에 큰 보람을 못 느끼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런 평가를 들으니 기분이 확 상했던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가치를 매기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어야지 결코 다른 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설령 내가 갈피를 못 잡고 헤매더라도 그것 또한 온전히 내가 감당할 일이다. 수지 큐는 내 일을 무시한 걸 사과했지만 애초에 그 정도로 풀릴 기분이 아니었다. 나 역시 내가 하는 일을 못마땅해하고 있었기에 ‘나는 네가 하는 일을 존중해’ 같은 말은 쓰디쓴 뒷맛만을 남길 뿐이었다. 지미하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싸우지 않았다. 웃기지 말라는 내 말에 지미가 바로 두 손 들고 항복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장 전술이었다. 파커 씨가 사흘의 휴가를 명령했을 때에야 지미가 내 뒤통수를 쳤음을 알았다. 그 일은 내면의 문제를 들끓게 했다. 내적인 불안을 계속 안에만 가두려다 보니 오히려 나는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외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정비 불량으로 덜덜거리는 엔진처럼 나를 고정하고 있는 나사를 죄 풀어버리고 자리에서 이탈하려 하고 있었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불안한 거야? 게다가 널 돌봐줄 의사들이 한 트럭이나 동행하는데.”

   수지 큐가 내 마음에 깃든 불안을 쫓아내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의 정체가 패배감과 무력감이라는 걸 모르는 그녀의 말은 애초에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내겐 노닥거릴 시간 따윈 없어.”
   “노닥거리는 게 아니라 추억을 만드는 거잖아. 나 혼자 외롭게 놔둘 거야?”

   추억을 만드는 이유는 뭘까. 살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추억이 아닌 추억을 만들려고 일부러 무언가를 하는 행위. 그런 게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까? 아버지는 결코 우리와 추억을 만들고자 별과 은하수를 보여 준 게 아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별을, 우주를 사랑하는 자신의 낭만을 나누어 준 거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그 광활한 공간에서 이렇게 작은 우리가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지를 알려 준 것이다.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내가 왜 구태여 일회성 유흥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해야 한단 말인가. 이 모두를 설명할 시간조차 아까웠던 탓인지 아니면 그저 구차했던 탓인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얼버무리기용 너스레를 내뱉었다.

   “지미가 있잖아. 어차피 거의 똑같이 생겼으니 나 대신이라고 생각하라구.”

   “뭐?”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왜 화를 내는지 몰랐으나 본능적인 감각이 즉각 내 사과를 유도했다.

   “미안, 내가 잘못 말했어.”

   그녀는 내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곧이어 갑자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다. 들어가서 달래야 하나?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더 나을까? 근데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마침내 남자답게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그녀도 침실에서 나왔다. 우리는 침실과 거실의 경계에서 딱 마주쳤다. 그게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그에 비해 그녀는 어쩐지 저돌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네가 하고 있는 일을 가치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 난 다만 이번에 가는 워크숍도 그에 상응하는 가치가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은 거야.”

   그녀가 논쟁 조로 나오는 바람에 나는 좀 전의 머쓱함을 금방 잊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말에서 내가 하는 일에 내가 매긴 가치가 여전히 오해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진실을 말할 때가 되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고 있어. 알다시피 나는 남들보다 20년 뒤처져 있잖아. 나는 뭔가를 찾고 있어. 그게 뭔진 나도 잘 몰라. 아무튼 그걸 찾기 전까진 다른 데 눈 돌릴 마음의 여유가 없을 거야.”

   그녀는 나를 향한 눈빛에 의문을 담았다.
   “넌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지금 하는 일에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사실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 일은 내게 눈곱만큼도 답이 될 수 없어.”

   큰 한숨. 이번에는 그녀 차례였다.

   “넌 지금 그대로도 충분해. 너 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어. 내가 사랑하는 건 지금의 너야.”

   아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말은 오히려 나를 더 짜증 나게 할 뿐이었고, 나는 미성숙한 사람답게 괜한 딴죽을 걸며 속 좁은 티를 내야 했다.

   “내가 더 잘 되는 게 싫어? 나는 지미처럼 되지 말라고 법이라도 정해져 있대?”
   “그런 말이 아니잖아!”

   황당한 기색이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한번 발동 걸린 치기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럼 뭔데?”

   그녀는 적당한 말을 찾다가 포기한 듯 벌렸던 입을 굳게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한동안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은 말들이 허공에 쏟아졌다. 내가 고작 이 정도에 머무르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나와 똑같은 잠재력을 지니고 태어난 쌍둥이는 잘나신 신경과학자가 되었는데 나는 이런 삶도 감지덕지란 말인가?

   물론 그런 뜻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말이 문자 그대로의 힘을 휘둘러 내 옷깃을 잡고 땅으로 끌어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성공하라는 엄마의 말과 정반대 위치에서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그 말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의 머리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두고 봐. 언젠간 증명할 테니까. 내가 태어난 이유, 다시 일어난 이유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강렬한 데자뷔에 머릿속을 내주고 말았다. 감금에서 해방되면서부터 잦아진 데자뷔. 일종의 부작용일까? 내가 이렇게 삐뚤게 나가는 것도 우울증의 초기 증상 아닐까?

   “내 사랑만으론 안 되는 거야?”

   데자뷔가 머릿속에 남긴 메아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말이 또 다른 데자뷔의 파동을 일으켰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