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the writer
샌프란시스코에서 살 곳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망할 놈의 테크 붐! 집값에서라도 뉴욕을 이겨 보자는 수작으로 야심 차게 치솟은 임대료에 경의를 표한다. 징그럽게 밀고 들어오는 나그네쥐 같은 고학력 고소득자들과의 경쟁에서 패한 나는 도시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소나 돼지 허리의 연한 살코기를 뜻하는 단어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동네에 작은 방을 얻었을 때 지미와 수지 큐는 똑같이 우려를 표했다. 마약과 범죄로 얼룩져 그곳 출신이 아니면 10분도 채 못 버틸 것 같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미지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거기 살면서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사건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으니까. 여행용 캐리어를 달달 끌고 멋모르고 들어선 관광객이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빈손으로 나오는 걸 몇 번이나 봤으니까.
그에 대해 죽음 그리고 가난과 등을 맞댄 곳 특유의 역동적인 삶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밑바닥 동네 어귀도 못 들어가 본 자의 전형적인 헛소리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다는 헛소리는 차라리 귀여울 정도다. 그곳은 그저 미래가 없어 더욱 위험한 사람들이 토해 낸 마약과 알코올에 찌든 몽롱한 숨 때문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암담한 장소일 뿐이다. 그곳에서의 삶을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려는 이들은 단 하루도 살아낼 수 없는 지독한 지열 지대……, 그곳을 둘러싼 주변의 모두로부터 지도에서 사라지기를 눈총받는, 도시의 고름 가득한 환부……. 그런 위험한 동네에 적응하는 건 결코 쉽지 않지만, 어쨋든 나는 해냈고 거기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그곳에서의 생존이 내 존재 의의에 더욱 확신을 줬던 것이다. 단순히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것 외에 더 큰 의미가 내게 있을 거라는 믿음, 그 증거. 그걸 매일매일 느끼고 확인하는 게 그곳에서의 내 삶이 돼야 했다.
그렇게 되지 못한 데에 남들을 탓할 이유가 없다. 병상에서의 20여 년을 저열한 상상으로 때운 내가 어떻게 진정한 어른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성인의 몸에 들어간 애송이에 불과했다. 원초적 욕망을 제어할 힘을 기르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온 지진아에게 허용되는 자유란 결코 넓지 않다는 걸 실감해야 했다. 내 학력으로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손에 잡히는 기회는 내 몸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강한 육체노동뿐이었다. 꾸준한 운동으로 근육량과 골밀도가 향상됐지만 건설 현장이나 부두에서 일할 정도는 아니었다. 면역력이 정상 범주를 밑도는 것도 나를 주춤하게 했다. 내가 어렵사리 구한 일은 시청 앞 커피 트럭의 파트 타임이었다. 매니저인 파커 씨는 반백의 머리칼과 콧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노인으로 베트남전 참전 용사 출신의 전직 교사였다.
“전화도 없고, 트위터도 안 한다고? 이유가 뭔가?”
그 질문을 처음 한 건 파커 씨가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같은 걸 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일어나면 그간 발전한 첨단 문명을 마음껏 누리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미디어와 주변을 쭉 관찰한 결과 그것들이 저주받아야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딜 가나 스마트폰에 코를 처박고 다니는 사람들……. 바로 코앞의 사람은 외면한 채 누구와 무슨 놈의 소통을 한다고 지랄들을 하는지. 그래, 물론 사회 운동에 영향을 미친 건 인정한다. 그런데 그건 굳이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되잖아? 그냥 집에서 컴퓨터로 해도 될 일이잖아? 이런 생각도 내가 삐뚤어진 탓인가? 글쎄, 요즘 애들이 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사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진 않다. 원래 세상은 애들이 열광하는 일을 어른들이 혼내고 못하게 해야 정상이거든. 그래 놓고 뒤에서 자기들이 더 열심히 하더라도 말이지.
“폰이 똑똑해지는 만큼 사람은 멍청해지더군요.”
파커 씨는 나를 단번에 채용했다. 자신과 같은 베트남전 참전 용사를 아버지로 두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대해주었다. 전쟁에 관해 딱히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작 분에 넘치는 호의를 받는 입장인 나는 헛된 공상으로 부풀려진 자의식으로 말미암아 그 일에서 어떤 보람도 만족도 의의도 찾지 못했다. 나는 그저 아버지보다 높은 연배인 파커 씨가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있는 현실을 두드러지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