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자유한국당은 자신을 뺀 여야4당이 선거제도 개혁과, 공수처 신설 법안 등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올린다는 합의를 하자, 대놓고 20대 국회를 보의콧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미온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애초 국회 정개특위에서 선거제도 개혁안을 논의할 때도 자유당은 내부 조율이 필요하다, 헌법도 같이 개정해야 한다 등 온갖 이유를 들어 자신들만의 '개혁안'을 내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4당(민주당, 바른미래당, 평화민주당, 정의당)은 3월 17일,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선거권 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등 선거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합니다. 이때도 자유당은 '누더기 밀실 야합'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지요.
지방선거 - 잘못된 선거제도의 폐해가 드러나다
선거제도를 왜 고쳐야 할까요? 현행 선거제도는 대부분의 의석을 소선거구제 지역구로 배정하고, 일부 의석을 비례대표로 나누는 방식입니다. 이런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지난해 6월 13일 열린 지방선거 입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민주당은 광역비례 약 51%의 득표율로 서울시의원 110석 중 102석을 얻습니다. 경기도에서 민주당은 약 53%의 득표율로 경기도의원 142석 중 135석을 얻습니다. 인천시의원도 55%의 득표율을 거둔 민주당이 37석 중 34석을 석권합니다.
애초 민주당이 90% 이상을 득표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당득표에서 50%를 조금 넘는 득표율로 90% 이상의 의석을 가져가는 것은 민의를 정확히 대변한 결과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수도권에서 자유한국당이 거둔 정당득표는 25.14%입니다. 하지만 수도권 광역의회에서 자유당 지지자들을 대변할 의원들은 대체 어디로 갔습니까?
이런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정치학자들은 대체로 비례대표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데 합의하고 있습니다. JTBC에서 OECD 37개국의 선거제도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총 24개 나라가 100%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영미권이라 불리는 4개국(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와 프랑스는 비례대표제가 아예 없으며, 한국 일본 독일 등 지역구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하는 나라가 8개국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에 가장 열정적인 정의당의 경우 독일식으로 지역구 의석은 있지만, 정당득표를 기준으로 의석을 나누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민주당 등 다른 당이 난색을 표하면서 결국 비례대표 의석을 48석에서 75석으로 약간 늘리고, 전체 의석의 50%에만 연동형을 적용하는 방안이 3월 17일에 합의된 것입니다.
위의 지방선거에 50% 연동형 방식을 적용해 보겠습니다. 수도권 광역의원 숫자는 총 289석입니다. 그리고 자유당의 정당득표는 25.14%였습니다. 50% 연동형 방식이라면 자유당은 289석의 12.07%에 해당하는 34석은 최소한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유당이 확보한 의석은 12석에 불과합니다.
물론 자유당이 강세인 TK 지역에서는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계산을 해봅시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자유당은 TK에서 49.82%의 득표율로 90석 중 66석을 가져갑니다. 민주당은 34.82%의 득표율로 14석을 가져가는데 그칩니다. 50% 연동형이 적용되더라도 민주당은 90석의 17.41%에 해당하는 15석을 가져갈 뿐입니다. 9.4%를 득표한 바른미래당 역시 4석 정도를 가져가는데 그칩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TK 지역에서 몇석을 내주고 수도권에서 30석 이상을 가져가는게 이득인 것 같은데, 자유당은 생각이 다른가 봅니다.
PK 민심이 반민주당으로 돌아섰다고? 근거는?
아마 자유당은 지금의 추세라면 자신들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이길 수 있으리라 전망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은 2016년 총선에서 자유당(당시 새누리당)은 12년만에 제1당의 지위를 민주당에게 내줍니다.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싹쓸이하다시피 이긴 덕분이 큽니다.
게다가 2016년 총선 때는 국민의당의 위력이 컸습니다. 호남 28석 중 23석이 국민의당에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내년 총선에서는 호남 의석 대부분이 민주당에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물론 PK지역에서는 자유당이 과거의 위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PK에서 8명의 당선자를 냈습니다만, PK에서의 민심이 3년 전과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PK의 민심이 과연 '확 달라졌나'라는 점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16년 총선 당시 민주당은 경상남도에서 24%(자유당은 44%), 부산에서 26%(자유당은 41%), 울산에서 22%(자유당은 36%)의 득표율을 올렸습니다. 가장 최근 발표된 4월 18일자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PK에서의 민주당 지지율은 43%, 자유당 지지율은 17%로 오히려 역전됐습니다.
물론 1달치 조사를 모은 한국갤럽의 3월 통합 여론조사를 보면 자유당이 33%, 민주당이 25%로 자유당이 민주당을 앞선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2016년 총선 당시 PK에서 양 당의 지지율 격차가 14~20%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PK민심은 3년 전보다 오히려 민주당에게 호의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여전히 자유당은 TK, PK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당에 열세입니다. 게다가 3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의 표를 갈라먹었던 국민의당의 후신인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도 지금은 큰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다시 3년 전 총선으로 돌아가봅니다. 서울에서 새누리당은 30%(민주당 25%), 경기도에서 32%(민주당 26%), 인천에서 33%(민주당 25%)를 득표했습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민주당 당선자는 82명인데 반해, 새누리당 당선자는 35명에 그칩니다. 정당득표에서 오히려 앞섰음에도 손해를 본 것입니다.
자유당의 태클, 민주당은 속으로 좋아할듯
당시 민주당이 새누리당보다 정당득표에서 열세를 거둔 결정적 이유는 국민의당입니다. 국민의당이 수도권에서 25% 이상의 득표율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당시 국민의당을 뽑았던 사람들이 과연 반반으로 나뉘어 내년에 민주당, 자유당을 뽑을까요 아니면 민주당에게 더 많은 표를 나눠줄까요? 오히려 내년 수도권 총선에서는 82:35보다 비참한 결과가 자유당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사실 민주당은 속으로 좋을 겁니다. 민주당 역시 선거제도 개혁을 하면 의석에서 손해를 봅니다.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의당은 10% 내외, 바른미래당은 5~7% 정도의 고정 지지층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제도대로 총선이 실시된다면 민주당은 자유당만 걱정하면 됩니다. 정의당, 바른미래당 후보가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지역구는 몇 곳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가 도입된다면 좋든 싫든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에게도 어느정도 의석이 배분됩니다.
민주당 지도부도 겉으로는 자유당을 비판하지만 속으로는 '나경원 화이팅'을 외치며 지금 제도대로 총선이 실시되길 바랄 수도 있습니다. 작년 지방선거처럼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싹쓸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래저래 생각해봐도 자유당이 선거제도 개혁을 방해하는 것은 바보짓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