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지냈던 나의 오랜 할머니댁은, 내가 대학교 새내기때부터 2학년때까지의 겨울까지의 시간을 보냈었고 그 후의 직장생활의 첫발을 내딛은 2018년 첫해에서도 이어졌다.
새내기가 되기 직전 나의 오랜친구이자,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었던 할아버지의 임종을 할머니와 홀로 맞이하고난 5년이 지난뒤, 몇번의 봄이 찾아왔다.
할아버지가 떠나가신 할머니댁에서, 나는 대학교의 스트레스와 여러저런 방황.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떠낸 슬픔을 겪으셨다. 그래서 같이 살이 쭉쭉 빠져서 스트레스를 받던 때에, 가장 많이 했던 말이자 많이 들었던 말은 '배가 고프지 않다.'였다. 거식증을 단기적으로 앓고 났을때 할머니 또한, 나 또한 살이 가장 빠져있던 때, 가장 허기지면서도, 배가 덧수룩한 나날이었다. 물론 할머니는 나라도 잘 먹어야 한다면서, 요리를 좋아하시지 않았지만 여런저런 음식을 하려고 하셨고, 나는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잘 먹지를 못했었다.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무엇이 그렇게 우리를 배가고프게 했고, 배가 부르게했는지 잘 몰랐다. 지금와서의 그 상처를 생각해보면 울컥하기도 하면서도 덤덤하기도 하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바로, 할머니와 함께하는 식사시간이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우리의 식사시간은 즐겁다. 물론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지라, 늦게 돌아오는 날에는 할머니는 홀로 진지를 드신다. 나는 할머니의 집밥이 좋다. 사연이 있는 반찬들이 많다.할머니의 정원은 4년전의 할아버지를 떠난 뒤의 억지로 가꾸던 정원보다, 조금은 재미있고 즐거운것들이 많이 자라는 중이다. 단호박도 얼마전에 심으셨다고 한다. 의도해서 심은것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심으셨다고 한다. 시장속에서 얻어온 야채씨앗에 대한 얽힌 이야기는 생생하면서도, 나중에 자랄 모습을 상상하자니 설레기도 한다. 나는 오랜만에 맛있는 새순을 먹었다.
나 또한 예전보다 야채를 사랑하게되었다. 특히 할머니가 가꾸신 야채들이 좋다. 밥을먹으면서 할머니는 한 야채 야채마다, 한이 맺혔던 사연부터, 즐거운 사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높은 톤과 시끌벅적한 할머니의 목소리는 마치 판소리의 노래처럼 들리는듯 하다. (졸릴때 들으면 약간 멍멍하다.)
오늘은 허겁지겁 집에와서 밥을 먹는데, 할머니의 고민거리가 주요화제였다.
할머니의 정원밭에 고양이의 길가가 있기 때문에, 항상 고양이들이 할머니의 밭을 파해친다는 것이었다. 화가잔뜩 나신 할머니는, 그간의 참았던 울분과 함께 고양이들에 대한 원망을 토해내셨고 나는 빵터져서 웃으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고양이들을 포획하시려는 할머니의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애를 썼다.)
또 다시 봄은 오고 있다.
왜냐? 할머니는 또다시 자신의 밭을 고양이로부터 지키기 위한 사투를 시작하니까.
(겨울에는 뭔가 자라지 않아서, 고양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도 상관없이 때문)
지금도 할아버지의 흔적은 있고,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조용한 밭이 딸린 우리집에는 할머니와 나의 즐거운 수다가 가득찰때도 많다.
나는 자라고, 할머니도 자라는 중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