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디를 가든 굴 요리를 만날 수 있다. 굴튀김부터 구운 굴, 굴 전골까지 조리법도 다양하다.
그런데 일본에서 굴 하면 유독 유명한 지역이 있다. 바로 히로시마다. 일본을 대표하는 굴 산지로, 전국 굴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할 정도다.
히로시마는 어쩌다 굴로 유명해졌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곳의 굴을 먹기 시작했을까?
그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로시마만 주변에서는 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의 패총에서 굴 껍데기가 발견된다. 패총은 당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등이 쌓여 만들어진 유적으로, 오래전부터 이 지역 사람들이 바다에서 굴을 채취해 먹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산 굴을 채취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양식이 시작된 것은 무로마치 시대 말기인 16세기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히로시마 지역 자료에는 1532년부터 1555년까지의 덴분 연간에 굴 양식법이 고안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처음에는 갯벌에 돌을 놓거나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 굴이 붙어 자라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지금처럼 바다 위에 수많은 양식 뗏목이 떠 있는 풍경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기술은 히로시마 굴 산업의 밑바탕이 되었다.
히로시마 굴이 널리 알려지는 데에는 맛과 생산 환경뿐 아니라 유통 방식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도 시대에는 히로시마에서 생산한 굴을 배에 싣고 다른 지역으로 운반해 판매했다. 그중 흥미로운 것이 바로 ‘가키부네(牡蠣船)’, 즉 굴 배다.
굴을 운반하고 판매하던 이 배들은 오사카 등지로 진출했으며, 일부는 배 위에서 굴 요리를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지금으로 치면 굴 전문 음식점과 유통 수단을 결합한 형태였던 셈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히로시마 굴은 생산지인 히로시마를 넘어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냉장·냉동 유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굴을 먼 곳까지 운반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히로시마 굴의 명성은 좋은 바다에서 시작됐지만, 그 이름을 전국으로 퍼뜨린 것은 사람들의 기술과 상업적 노력이기도 했다.
오늘날 히로시마가 일본을 대표하는 굴 산지로 자리 잡은 데에는 이처럼 오랜 역사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