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딜방아는
발로 디디어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를 말한다
굵은 나무 한 끝에 공이를 박고
다른 한 끝에 두 갈래가 나게 하여 그 곳을 발로 디디게 하여 찧는다
공이가 닿는 아래에는 동그란 구멍을 파서 방아확을 만들어 썼던 것이 디딜방아다
내가 어릴적 살던 집에는
뒤뜰에 방아간아 있었고
방아간옆에는 어린내가 들어가면 보이지도
않을만큼 큰 항아리들이 즐비하였고
그곳에 엄마는 온갖 곡식들을 저장하곤 하셨다
그후에는 짚은로 만든 포대가 사라지고
비닐로 만들어진 포대가 등장하면서
그큰 항아리들은 비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곳은 오학년이 되던 해에야
전기란 것이 들어온 강원도 깡촌이다
전기불이 켜졌던 광명한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히다
촛불 등잔불에 의지해 숙제를 하고 지내던 내게 전기불은 광명천지이였다
그처럼 문명의 혜택이 늦은 곳이
내가 살던 고향이였다
우리 동네에서 방아가 있는 유일한
우리 집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빻기위해 모여들곤 했었다
우리 엄마도 명절과 제사때에는 쌀가루를 김장철에는 고추가루를
된장 고추장 철에는 메주를 찧으셨다
물론 방아를 찧는 날에는 우리 형제들이
동원되어 방아를 찧어야 했다
엄마는 공이와 공이확이 있는 곳에서
곡식이 잘 빻아지도록 공이가 들릴때마다
손을 넣어 잘도 저어주셨다
그리고 채로 고운가루를 걸러내고 거친것들은
다시 넣어 찧고 거르는 일이 반복 되면서
일이 끝나가게 된다
힘이 없던 어린나이에
방아를 찧는 일은 참 고된 일이었다
그러던 4학년 여름방학때 언니와
동생들과 방아찧기 놀이를 하게되었다
그날 내가 했던일은 언제나 엄마가
하시던 공이확 구멍에 손을 넣고 저어주는
일이었다
사용하지 않을때는 늘 가벼운 왕겨를 공이확에 채워 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뒤적이며 곡식인양 공이가 들릴때마다
손을 재빨리 넣어 휘저어 주는 엄마 놀이를 했다
그런데
힘이 약했던 언니나 동생들의
다리힘으로 들어 올리는 공이는 불규칙하게
들렸다 쿵 떨어지곤 했는데
어느순간 내가 손을 넣자 올라가던 공이가
그대로 내 손등위로 떨어져 내렸다
공이끝 둥근부분에는 잘 찧어 지라고
둥글지만 뾰족뾰족한 철로 쒸워져 있었기에
내 손등에 떨서진 공이는 큰 상처를 남겼고
아픔에 놀란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들고 어쩔줄 몰라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때 어디선가 큰 나무막대를 들고
달려오신 아버지는 내손을 보시더니
상처에 부으면 거품이 부글거리는
과산화탄소를 부어주셨고 천조각으로
상처를 동여매 주셨다
처치는 그렇게 간단히 끝났고 어찌 상처는
아물었지만 아직도 내 손등에는 그때의
흉터가 남아 있다
아버지는 내가 울부짓는 소리를 들으시고 들짐승이 덥치기라도 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 상처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은 사라져 찾아볼수 없는 시골의 풍경과
나무 작대기를 들고 뛰어 오셨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곧 설이 돌아오는데 디딜방아라도 찧어보고
싶도록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새롭고 그립다
그때 나무작대기를 들고 뛰어 오셨던 아버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