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여성 투자자: 헤티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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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원금의 1,000배를 번 천재 투자자:
투자보다는 구두쇠로 악명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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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여성의 날을 맞아서 경제학도 출신의 젊은 논객 bakkabun@bakkabun님은 여류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에 대한 헌사를 남겼습니다. 저도 이와 같은 컨셉으로 누군가 남겨야지 싶었는데 퍼뜩 떠오른 사람이 '헤티그린 여사'였습니다. 여성의 날에 글을 올렸어야 하는데 시간은 조금 놓쳤지만 개의치 않고 기록을 남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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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남초 학문이지만 '로자 룩셈부르크', '조앤 로빈슨'과 같은 걸출한 여류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실전 투자 분야는 이론 경제학 분야보다 남초현상이 더 심해서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손꼽을 만한 투자 사상가나 자수성가 억만장자 여성의 이름을 대라면 딱히 댈만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사업으로 성공한 여성이나,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은 여성은 많았어도 순수하게 여성 투자자의 이름을 대라면 일단은 헤티 그린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국내에도 백희엽 여사님이 계시기는 하지만...) 헤티그린은 당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여성 부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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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녀는 늘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 있었지만 록펠러, 굴드, 밴더빌트, JP모건과 같은 악명 높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굳세게 일을 잘 해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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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티그린은 21살에 물려받은 유산 9만 달러로 투자를 시작해서 82세에 눈을 감을때는 초기 원금의 1,000배가 늘어난 1억 달러의 돈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시가로 환산하면 18조 원입니다. 연평균 수익률로 환산하면 6%에 불과한 수익률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녀는 '복리의 원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실제로 이뤄내기 위해서 실천을 해 나갔습니다. 무려 50년간요. 50년간 연평균 수익률 6%를 꾸준히 올릴 수 있는 투자자는 아마 세상을 다 뒤져도 거의 없을겁니다. 잃지않고 장기간 6%씩 복리로 쌓아나간 재산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의사결정 능력이 탁월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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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보수적인 투자자였습니다. 그녀는 채권 투자를 시작으로 부동산이나 철도와 같이 안정적인 기반 산업이나 국가를 상대로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채업과 같은 돈놀이도 했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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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수익률과 주요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보실 수 있듯이 그녀는 '복리의 기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엄청난 자린고비 생활을 하였습니다. 복리의 수익은 초반에 얼마나 아끼냐가 관건이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그녀는 투자금을 불리기 위해서 극도의 절제 생활을 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구두쇠였는지 몇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평생 춥다고 난방과 온수를 튼 적이 없습니다. 50년간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미국 전역의 주(state)를 돌며 허름한 아파트에서 지냈습니다. 큰 아들 제임스의 다리가 부러져서 치료를 빨리 받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녀는 병원비 150달러를 아끼기 위해서 병원에 가지 않았고 아들의 다리는 결국 절단하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의사와 변호사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한쪽 다리를 잃었음에도 그녀는 싼 목발을 사기 위해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발품을 팔았습니다. 남편 에드워드와 결혼할때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신의 재산에 손을 안 댄다는 조건으로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무역업을 하는 사업가였는데, 남편의 사업이 파산하자 곧장 이혼했습니다.(하도 돈돈 거리니 남편이 허위파산을.. ㅎㅎ) 그녀에게 친구는 돈, 주식관련 정보 그리고 키우던 개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악명높은 세계 최고의 구두쇠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구두쇠로 절제하면서 산것은 어릴적에 본인보다 먼저 죽은 동생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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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과 돈 문제로 싸움을 벌이고, 아들의 다리를 잘리게 하는 등 그녀는 많은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녀 자신은 꿀꿀이 죽에 가까운 식사를 하면서 돈을 아끼고, 의류비와 세탁비가 아까워서 검정색 누더기 같은 옷 한벌만을 몇십년간 입고 다녔으면서도, 도시 빈민들을 위해서 꽤 큰금액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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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마녀'라는별명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그 많은 돈을 남긴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고(사업상 지인과 사소한 말다툼을 하다가 혈압이 올라서 쓰러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자녀들은 헤티그린 여사가 모은돈을 펑펑 썼습니다.(아끼다 똥된 사례). 큰 아들 제임스는 사치품 구매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단체와 과학자들에게 많은 기부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평생 돈 때문에 힘든적은 없습니다. 19조 원은 정말 큰돈이기 때문에 돈을 써도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실비아는 물려받은 1억 달러 중 98.7%인 9,870만 달러를 전국 64개 자선 단체에 기부하여 멋진 삶을 살아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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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티그린 이후에 이렇다 할 여성 투자자가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초현상이 정말 강한 분야입니다. 헤티그린을 넘는 여성 투자자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이왕이면 우리나라에서요.

헤티그린, Hetty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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