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jisang 입니다. 해외 의료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 연재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의과대학 학생에서 의사가 되는 길은 앞선 포스팅에서 보셨듯이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의사 면허증이 나오게 되죠. 국가고시는 의사로서 필요한 의료지식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의료 상황에서 적합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평가하게 됩니다. 실기 시험 CPX 중 하나의 항목인 나쁜 소식 전하기도 이러한 의료 상황에서 환자와 의사소통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항목입니다.
나쁜 소식이라하면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은 사례로 알아보겠습니다.
- 60세 여자 박복자 씨가 아랫배의 통증과 가끔씩 변을 볼 때 피가 묻어나온다고 해서 병원을 방문했었습니다. 정기검진을 오랫동안 받지 않았던 그는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병원에 내원하였고, 대장내시경 검사 결과 비정상적인 병변이 보여 조직검사 및 복부 CT 검사를 시행하고 돌아갔습니다. 일주일 후 조직검사 결과 상 대장암으로 확인되었고 복부 CT 검사 결과상 복막 및 간에 퍼져있는 전이암이 확인되었습니다. 내일 박복자 씨가 검사 결과를 들으러 내원합니다.
- 평소 건강하던 6세 남아 최강건 군이 유치원에서 놀다가 몸에 멍이 많이 든다고 해서 어머니가 병원에 데리고 왔습니다. 3일 전쯤에는 감기에 심하게 걸려 고생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혈액검사를 시행했고, 결과에 이상함을 느낀 내과 선생님이 골수 검사를 제안했습니다. 골수 검사 결과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이 진단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혹시나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진 않을까 초조해 하며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 김수용 씨는 4개월 전 췌장암을 진단받고 항암치료 중입니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구토와 설사가 심해 입원하면서 관찰 중입니다. 현재 4 cycle 째 항암치료를 완료하였으며, 며칠 전 치료 결과를 보기 위해 복부 CT와 전신 스캔 사진을 찍었습니다. 검사 결과 원발암의 호전은 보이지 않았고 간으로 전이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기존 치료 방법이 효과가 없는 것을 확인한 주치의는 최근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인 신약의 임상시험을 권유해 볼지, 혹은 호스피스 치료를 권할지 고민 중입니다.
- 이광명 씨는 3개월 전 동남아 여행을 하고나서 열이 나고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상 HIV 선별검사 양성이 확인되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HIV 확진검사를 권유했고, 어제 검사 결과에서 HIV 확진 검사 양성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씨는 동남아 여행 시 위험한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고 하였지만, 단 한번의 관계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위와 같이 다양한 상황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의 상태를 잘 고려하여 전달하는 게 필요하겠죠. 또 1-2번과 같이 암 진단을 설명할 때와 4번처럼 에이즈 환자임을 설명할 때 고려해야할 방법이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의과대학생은 정형화된 가이드라인을 따라 배웁니다!
2001년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이런 나쁜 소식을 전하는 상황에서 환자 및 보호자의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의료인에게 필요한 가이드를 제시하였습니다. SPIKES 모델이라고 불립니다.
S ; Setting
좋지 않은 소식을 전달하기 전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눈물을 터트릴 수 있는 환자를 위해 티슈도 준비하고요. “그 동안 좀 어떠셨나요?”, “혼자 오셨나요? 아니면 보호자 분과 같이 오셨나요?”와 같은 질문으로 환자의 기분을 파악합니다.
P ; Perception
병에 대한 환자의 인식 정도를 파악합니다. "지난번에 검사하고 가셨죠. 어떤 병일지 생각해보셨나요?" "어떤 결과일지 생각해 보셨나요?"
I ; Invitation
환자가 얼마나 알고 싶어하는지 확인하고, 참여시킵니다. "결과에 대해 설명드리려고합니다. 혼자, 아니면 보호자 분과 같이 들으시겠어요?" "진단만? 아니면치료/예후까지 들으시겠어요?"
K ; knowledge
환자에게 정보를 공유하고 설명합니다. 한 번에 많은 양의 정보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반응을 보면서 정보를 단계별로 제공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조직 검사결과 좋지 않은 세포가 확인되었습니다. 내시경 사진에서 보시면 불규칙하게 암세포가 성장한 소견이 보입니다. 그래서 대장암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E ; Emotion
환자의 감정을 확인하고 적절하게 반응합니다.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많이 놀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시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걱정되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 (때론 침묵이 금이기도 합니다.)
S ; Strategy/Summary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요약 및 정리합니다. "앞으로 수술과 항암치료 및 방사선치료를 병행할 계획입니다." "혹시 이해가 되지 않거나 궁금한 점은 없으신가요?" "가족들에게 말씀 드리기 어려우시면, 제가 대신 설명해드릴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할 이론은 미국의 심리학자 Kübler-Ross의 '죽음의 5단계' 입니다. 사람이 죽음을 선고받고나면 이를 받아들이는 데 5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하죠.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 진단을 믿지 않고,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기도 합니다. 진단 과정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리고는 주변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죽음 앞에서 절대자나 신과 협상을 하려고 합니다. 이전에 하지 않던 착한 일을 하면서 죽음이 연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시기입니다.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을 앞두고 깊은 우울에 빠져있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아 있는 시간을 후회없이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가 이러한 감정 굴곡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분노나 우울의 시기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겠죠.
다양한 이론을 토대로 의사는 환자에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사회적-영적 상태를 고려하여 적절한 치료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에이즈의 경우 바로 사망하는 질병이 아니고 평생 동안 잘 관리할 경우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정보를 전달해 주면서,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감염 예방을 위한 조치를 적절히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좌절감이나 수치심을 강하게 느끼지 않도록 적절한 공감을 표시하면서 치료 동맹관계를 성립하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p.s. 실제 임상 진료 현장과는 차이점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론과 실제의 gap은 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