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XX….”
화가 나서 마신 술에 아무렇게나 나부러져 잠을 잤나 보다.
몸이 아픈 것 따윈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에게 화가
났고, 지난 세월, 외롭고 힘든 시간을 버텨온 게 아까웠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카지노에서 날린 2억원에 가까운 돈이
아까웠다.
이제 갓 서른…
태어나서 한번도 이 곳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가면 있는 대학과 군대가 가장 멀리
떠나 오랜 생활을 했던 게 전부.
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 학원 강사를 하며, 여자친구도 없이,
친구들과 술잔을 기우리며 살았지만, 더 나아지는 것도,
더 나아질거란 생각도 없었다.
이미 이혼한 부모…
엄마를 따라 미국으로 간 누이들…
그렇게 서른이 되었을 때 미국으로 갔다.
결혼한 큰 누나….매형과 함께 석사과정을 밟고있었고,
난 그 집에 얹혀 살았다.
안되는 영어에 집 밖은 또다른 감옥이었고, 집안 역시 감옥이
었다. 뭐가 그리 힘들었는지, 대한민국의 삶을 포기하고,
미국 땅을 밟았지만, 가진 돈도, 어떠한 꿈도, 목적도, 계획도….
그야 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감마저…
그런 나와는 정반대로, 누나와 매형은 누가 봐도 바른 생활에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며, 언제나 밝고 자신감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 더 비참함을 느끼고,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었다.
몇 주간은 시차적응을 핑계로, 또 몇 주간은 미국사회를 염탐하듯
적응한다는 핑계로 지냈지만, 염치라는 것이 이미 들불처럼 일어
내속을 태우고 있었기에, 하염없이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종교도 없다.
그저 누나가 다니는 교회라도 가야,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고,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었기에 교회를 다니며, 한인들과 스치듯
만나기 시작했다.
누나와 매형이 인사하라며 많은 분들을 소개해줬고, 그렇게 얼굴과
이름이 익숙해 갈 때쯤, 일식식당을 하시는 분이, 일자리를
제안해 왔다.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식당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도 안되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주방의 허드렛일.
하지만 괜찮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갖혀 하루를 보내거나,
하염없이 길을 걸어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험한 일이라도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게 차라리 편했다.
처음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저 주어진
일만 했고, 돈은 얼마 받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게 좋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고, 주방 보조로, 칼을 손에 쥐고, 야채를 다듬기
시작했고, 그렇게 또 몇 개월 후엔 생선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칼을 잡는 건 상당히 빠른 편이다.
하지만, 사람이 잘 구해지지도 않는데다가 이직률도 상당한 편이라,
누군가가 그만 두면 빨리 그 자리를 대신 해야 했기에, 그야 말로 닥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칼을 갈다가, 칼을 닦다가, 칼로 생선을 손질 하다가,
손이 베이고 또 베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무서웠던 건, 다찌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미국 손님들….
처음엔 손도 심장도 온 몸이 떨렸지만, 어색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는 나에게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물론 함께 일하던
선배가 대신 답을 해줬기에, 영어 못하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으로
생각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것이 더 전문가로 포장이
되기도 하는 때도 있었지만…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나가고, 그 자리는 또 누군가가 채우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집을 돌아가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거나, 이사를 하거나 하면 옮기는
경우가 있는데, 경력이 쌓일 경우, 급여 문제, 또는 운영방식의 문제로
사장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손님을 직접 마주하며 이야기도 하고, 단골도 만들며, 기분 좋을 땐
두둑한 팁을 주는 손님들…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거만함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사장과 상의 없이 손님들에게 나가는 서비스나 재료문제로
트러블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 외에 문제들도 비일비재 하지만, 암튼 난 그렇게 1년,2년, 3년을 일만 했다.
아침에 나가서, 점심 손님 치르고, 오후에 잠시 문을 닫고 좀 쉬었다가,
저녁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집에오면 쑤셔오는 몸뚱아리를 눕히는게
하루 일과 였고, 며칠 되지 않는 쉬는 날엔 그저 잠으로 채웠다.
그렇게 3년 이란 시간이 흘렀고, 식당 일에 적응이 되어, 심적 여유가
생길 무렵, 갑갑함이 찾아왔다. 희망따위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단 답답한
한국 생활이 싫어 떠나온 곳. 하지만 한국이 그리웠다. 퇴근 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우리고, 목이 터져라 노래라도 부르며 세상에 욕지거리라도
날리던 그때가 그리워지다니…
“지금 여기서 난 뭐하고 있는거지?”
이방인으로, 또 보이지않는 존재로 삼십대 중반을 맞이 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슬럼프가 찾아왔고, 한순간 모든 게 허무했다.
돈을 벌어도 쓸 줄도, 쓸 시간도 없이…
몇 개월을 그렇게 보내다, 일을 그만 뒀다.
“누나…나 한국에 다녀올께…어버지도 만나고…”
재혼을 하셨지만, 온 가족이 미국으로 간 상태….
솔직히 그의 마음이 어떠 한진 중요하지 않았다.
사춘기 때, 재혼한 그를 보며, 우리 가족을 배신 했다는 분노에 휩싸여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채, 말없고 순한 아들로
살아왔었다. 아버지와의 만남을 핑계로 한국에 와서,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다니며, 한국에 다시 눌러 앉을 생각을 했지만, 역시나 갑갑했다.
정해진 듯한 판에 박힌 삶의 방식과 철저한 복종을 요구하는 직장,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실력보단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알 수 없는 일상의 비리들..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만 보는게 아닌가 싶지만, 왜 그런지 난 그런
삶을 겪으며 20대를 보냈기에, 다시 발을 딛기가 무서웠다.
(출처 : 트렌드 모니터)
1개월 정도…충분했다.
미국 가기 전 느껴지던 그 속박된 듯한 삶을 맛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고,
몇 군데 알아본 직장도, 3년간의 미국 생활을 이야기 하면,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이나, 만점에 가까운 토익점수를 요구 했다.
물론 난 여전히 초보수준…. 컴퓨터 학원도 많이 없어졌다.
집집마다 있는 컴퓨터와 인터넷도 한 몫 했지만, 프로그램을 안 만져 본지가
너무 오래 됐기에 딱히 갈 곳도 없는…
그렇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모텔청소를 시작했다. 멕시코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고,
그 중 한명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같이 가자고 하기에 뭐하는 곳이냐
했더니, 사무실 청소라고 한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일하는데, 모텔 청소 보다 보수가 더 괜찮다고…
그래서 난 두가지 모두 했다. 어설픈 여유는 잡념을 만들어 냄을 알기에,
몸이라도 혹사시켜, 그 여지를 주지 않고 싶었다.
모텔청소가 끝나면, 누나 집에 가서 잠을 자고, 늦은 밤 사무실 청소를
시작해, 새벽까지 빌딩 사무실 청소를 마치고, 출근 시간 전까지 빌딩 한
구석에서 쪽 잠을 잔 후, 근처 싸구려 식당에서 커피와 대충 아무 빵이나
하나 목구멍으로 쑤셔넣고 다시 모텔로 가서 청소를 했다.
스스로 그렇게 사는 거라며, 그렇게 돈을 모아서 시민권이 나오면
본격적으로 뭔가를 해 볼 거라며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청소 일이 사람
만나서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영어 실력은 그저 제자리…
갑갑한 마음에 회피하듯 온 미국에서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 처지를 한탄
할 것도, 그 이상을 바라는 희망고문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는 것…그게 유일한 낙이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똑같이 일하면 얼마를 모았을까?
알 수는 없지만, 미국 생활 5년만에 2억을 모았다. 일식집과 청소일로….
쓸 시간도 없었던 데다, 누나집에 얹혀 살았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싶다.
누나에게 생활비를 얼마 주긴 했지만, 매형의 반대로, 그 마저도
굳어버렸으니, 쉬는 날 간혹 외식비를 내가 내는 것 말곤 딱히 돈 들어갈
일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독립. 방 한 칸 짜리 작은 집을 구하고, 중고차도 바꾸고,
짐이라곤, 옷가지 몇 점이 다 였지만, 왠지 모를 성취감에 처음으로
기쁨을 맛보았다. 사람이 참 희한하다 싶었다.
누나집이 훨씬 좋고, 편했지만, 보다 누추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타국에서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그런 기분….
지난 날 고생했던 내가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뭐든 적응이 되면, 처음의 힘든 것이 사라지는 모양이다.
청소일도 요령이 생겨, 빨리 끝낼 수 있었고, 잠자는 시간도 늘어 났지만,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 패턴으로 계속 살수가 없었기에, 다시 일식집으로
들어 가려고 독립을 한 것이었다.
“하~! 다시 칼을 잡게 될 줄이야….”
하지만, 처음 일식집 보다 더 크고, 나름 체계도 잘 잡혀 있었다.
쉬는 날도 일주일에 한번. 퇴근 시간도 처음의 그곳 보다 그날 상황에 따라
한 시간 또는 그 이상 빨라졌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주변으로 드라이브도 다니고, 쉬는 날엔
공원이나 누나집을 오가며, 나름 정착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뭔가 공허한…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듯한…
그렇게 카지노에 발을 디뎠다.
화려한 내부와 휘황찬란하게 불빛을 내며 돌아가는 기계들 앞에서,
베팅 금액은 점점 높아져 갔고,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받으려 했는지,
시간만 나면 그곳으로 갔고, 운이 좋을 때는 크게 먹기도 했지만,
그 끝은 비참했다.
잠도 자지 않고 게임을 하는 날이 늘어났고, 피워대는 담배와 피로가 주는
스트레스에 몸이 망가져갔다. 그리고 본전 생각에 털어 부은 돈….
결국 모아둔 돈이 바닥을 보일 때 쯤에서야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처참한 상태었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일식집도 그만 두었고, 술이 없이는 잠을 자지도
못했다.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깼지만,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몸뚱아리도 답답함에 꼬여가고 있었고,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에
시야가 흐릿해 졌다. 눈을 떠보니 여전히 내 방이다…아직 갈 때가 아닌
모양이었나 보다. 옆에 있던 술병을 집어 던지고,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X새끼, XX새끼….”
온갖 욕을 해 대며,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봤지만, 이내 드러 누울 수 밖에…
취기가 남아 몸도 말을 안 들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같잖은 비웃음으로 나즈막하게 스스로에게 욕을 해 대곤
또 잠이 들었다.
어둑해진걸 보니 저녁인가보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 샤워를 하고,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꽤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가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 방을 치웠다.
그러고 보니 방 청소 한지가 얼마만인지…
담배에 찌든 옷들을 들고 빨래방으로 가서 세탁을 하고, 이불도 빨고…
그냥 지저분한 내 모습이며, 방 안의 모든 것들의 때를 벗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극에 달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 진 걸까?
다음날, 그나마 남아있는 돈으로, 옷이며 신발이며 새로 사고,
이발도 하고 차 청소까지….한결 깔끔해 졌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난 그렇게 지냈다.
밥처럼 약을 먹고, 시간에 상관 없이 피곤하면 잠을 자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답답하면 차를 몰고 공원으로 향했다.
죽기는 싫었는지, 몸이 반응하는대로 움직였고, 잘 먹고 잘 쉬고
방안이나 차에 더러운게 보이면 바로바로 치웠다.
마치 썩어빠진 정신머리와 마음 가짐을 바로 잡으려는 듯,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치우고, 닦고, 씻었다.
쟈니 : 12년 전에 한국 왔을 때 보다, 지금 상태가 더 좋아 보이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진거냐? 어이구야...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르는게, 미국에서 성공한 이민자의 모습이구만 뭘...
설마 잭팟?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