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의 인터뷰#13] 아빠의 장갑

jhani(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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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대로 지친 몸을 간신히 차에 앉히고, 시동을 켠 채 조수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운날씨라 그랬는지, 그 기다리는 시간동안 잠깐 잠이 들었지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이젠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기사: **까지 가시는 손님이시죠? 알려주신 곳에 왔는데요...

집까지는 대략 1시간 거리.
뜨끈한 히터에 잠이라도 잘 요량으로, 목적지를 자세히 알려주고,
행여나, 졸음 운전이라도 할까봐, 미리 사다놓은 비타민 음료를 건내고,
나도 하나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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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날씨가 많이 춥죠?

쟈니: 네...

기사: 장거리 손님은 오랜만입니다. 멀리까지 오셨네요.

쟈니: 네...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지만, 피곤이 몰려와 건성으로 대답하며,
남은 음료수를 마저 마시고있었다.

심심해서였는지, 아니면, 경계를 풀어보려고 한건지, 그는 시키지도
않은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음료수를 다 마시고 추위에 웅크렸던 몸을, 시원한 기지개로 깨워주곤,
반쯤 누운 몸을 일으키고,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밤 공기를 잠시 마셨다.

수원에서 집까지 운전을 부탁한 대리기사님...

쟈니: 늦은시간이라, 피곤하시겠요?

기사: 괜찮습니다. 늘 하는 일인데요 뭐...피곤 하시면 주무세요.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쟈니: 저도 괜찮습니다. 어정쩡하게 자고 일어나면 더 피곤해서,
집에가서 푹 자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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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용히 가고 싶었다.
업무차 일을 하러 왔고, 거래처 사람들과 저녁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술자리가, 편하지 않았었다. 업무이야기가
이어졌고, 숙제를 잔뜩 받은 학생처럼, 다음 날 업무보고와
향후 계획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기에, 몸보다 마음이
더 피곤한 하루였다.

기사: 출장 오셨나봐요?

쟈니: 네...

어색한 차안 분위기가 싫어서였을까, 기사님은 자꾸 말을
걸어왔고, 나의 짧은 대답만이 어려운 대화를 간간히
이어줄 뿐이었다. 같은 경상도 말씨에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서, 부산이라 답하자, 고향이 같다며, 이내 봇물 터진 듯,
이야기가 그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쟈니: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기사: 아이가 있으니, 돈이 더 필요했죠.
주야간 2교대 근무였지만, 보수가 좋아서, 오래 다녔습니다.
그렇게 15년 정도 일하다가 허리가 좋지 않아서 그만 두고
또 몇 년을 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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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는 아니지만, 본인 말로는 동수저 정도로 태어났다고 한다.
부친이 일본을 오가며, 물건 수입도 하고, 일본의 공사장에
한국의 인부를 구해, 보내는 일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대학다닐 때, 소위 부잣집 아들로 불리면서 친구들 밥이며,
술이며 본인이 다 책임지고, 졸업 후에는 부친이 하던
일을 같이 하면서, 결혼도 하고,어렵지 않게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서른. IMF로 거짓말 처럼 모든것이 무너졌다고 한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서,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고, 곧 좋아
질거라는 마음에, 씀씀이도 예전 그대로...
이에 부친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단다.
모친이 암으로 사망, 엎친데 덮친격으로 부친의 중풍이 이어졌다.

재기를 꿈꾸며, 그 동안 일을 하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당시의 상황은 열정만으로 이겨내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더 이상 그는 그대로 있을 수 없었고, 빚쟁이들을 피해 수원까지 올라와,
수원 외곽의 공장에 취직을 해, 일 해오다, 공장이 대전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커가는 딸아이 얼굴 제대로 보지도 못하며,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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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형편도 안정됐는데, 집 사람이
먼저갔어요. 병으로... 맞벌이를 하면서, 시아버지 병수발 드느라,
정작 자기 몸은 돌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악착같이 살다가 병을
키운거죠. 딸아이가 그때 한참 예민한 때라, 충격이 컸을겁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저도 허리를 다쳐서 병원신세를 오래 하곤,
결국 퇴사를 했죠...

쟈니: 고향에 친지분들이나, 지인분들계시지 않나요?
친지 분들 도움은 없었습니까?

기사: 잘나갈 땐 사람들이 많았죠. 명절이든 아니든,
꼬박꼬박 집으로 찾아오고, 연락이 오는데, 망하니까,
인맥이 끊히더군요. 어렵던 시절이다 보니, 다들 제 코가 석자라,
그랬을 겁니다. 친척들도 그렇구요. 더군다나 도망치듯 올라와서
연락을 먼저 끊었으니, 면목도 없었구요...

부친 모시고, 수원으로 올라와서, 아내가 병 수발 다 들고, 일까지
하면서 몸이 많이 상했죠. 그렇게 부친도 돌아가시고, 저도 대전으로
내려와 일하고...그렇게 또 아내가 먼저 가고...

쟈니: 따님은요? 그 큰일들을 감당하기엔 버거웠을 텐데...

기사: 그 아이 없어쓰면, 저도 진작에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허리 다쳐서 누워있자니, 앞이 깜깜하더만요. 매일 죽는 생각만 했었죠.
수원으로 올라올 때 보다 더 막막 했습니다.
정말 무섭다는게 어떤건지 그때 실감했습니다.

일부러 그런건지, 애비 정을 많이 못 받아서 그런건지, 싹싹하게 대해주는
딸래미보면, 더 미안하고.... 저 혼자 운 적도 많았습니다.
사춘기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딸아이가 웃을 수록 전 더 억장이 무너지고...
아픈 몸에 어떻게 해줄 수도 없고...정말 사는게 아니었죠.
그렇게 혼자 공부해서, 지금은 장학금 받으면서 학교 다니는데,
대견하죠. 미안하고....

얼마 전에, 딸아이 한테, 장갑을 선물받았습니다.
작업용 장갑이 주머니에 항상 있는데, 그걸 봤나봐요.
지 애비가 겨울에 장갑이 없어서, 작업용 장갑끼고 다니는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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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회사의 배려로, 다니던 회사에 소모품 납품 하고 있어요.
큰 돈은 안되지만, 그래도 고맙죠. 딱한 사정을 알고, 기회를 주니..
중국에서 물건 떼다가 납품하고 있는데, 작업용 장갑도 같이 납품해서,
물건 정리 할때 그걸 끼는데, 주머니에 있는 걸 본 모양입니다.
지 용돈도 없을 건데, 아빠 장갑이라니...참...

쟈니: 지금끼고 계신 장갑인가요?

기사: 네...ㅎㅎ 멋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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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세상에서 제일 멋져보입니다. ^^ 지금 허리는 괜찮으세요?

기사: 무거운건 번쩍 못 들지만 일상생활에는 문제 없네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쟈니: 건강해야 뭐든 하죠...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건강해야죠. 저는 누구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더 이상 딸아이 마음 아프게 하면 안되니까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다 달았다.
수원까지 올라갈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어쩔거냐 물어보니,
인근 찜질방에서 자고 첫차를 타고 올라갈 거라고 한다.

마음 같아선, 선술집에 앉아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다음날 서로의 일과가 있어, 그러지 못했다.

쟈니: 덕분에 편하게 잘 왔습니다. 잔돈이 없어서....

대리운전비 7만원...
대리운전 할거라고 미리 준비해둔 돈이 있었지만, 5만원권 두장을
내밀었다.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주려던 기사님...

쟈니: (그 손을 잡으면서)
건방진 말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따님 장갑 사는데 보태 쓰신다면,
제가 잠이 잘 올 것 같은데요....

당황한 그의 표정을 멋쩍은 미소로 답하곤, 돌아서서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맙다는 그의 말에 쑥스러운 듯, 고개인사를 건네곤,
총총걸음으로 집으로와, 자고있는 아이들과 아내의 이불을 매만져 주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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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의 꿈속에서나마,
찜질방의 훈훈한 온기보다, 더 따뜻한 아빠의 손으로,
새근새근 잠든 그의 딸아이 이불을 덮어주고,
아내와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며, 딸아이가 사준 장갑을 자랑하는
행복한 꿈을 꾸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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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손글씨 만들어주신 sunshineyaya7@sunshineyaya7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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