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시작할 무렵보다 겨울이 무르익어서 추위가 막바지에 다다르면 딸기 생각이 간절하다.
내 큰아들이 18살이 되었으니 18년 전 내가 임신을 했을 때이다.
갓 결혼을 해서 임신을 한 나는 정말이지 가난했었다.
친정이 서울이었던 내가 경주의 한적한 시골 외각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할지 몰랐지만
나는 그렇게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먹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것도, 하고 싶고, 사고 싶었던 모든 것을 할 수 없었다.
어느날 밤에 경주 시내에 남편과 볼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 가는데
멀리서부터 딸기 딸기 딸기 라는 간판과 트럭에서 딸기 1바구니에 만원에 팔고 있었다.
임신한 나는 너무 먹고 싶었지만 돈이 없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에
남편에게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그 겨울에 딸기 한 바구니를 먹지 못하고 4월의 봄에 큰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낳은 아들은 가난했던 우리 부부의 걱정을 딛고 건강한 18살의 고딩이 되었다.
어떻게 그 어두웠던 터널을 지나 왔는지 모르겠다.
20여년을 살았던 서울을 뒤로하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친구나 가족도 없이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남편하나 믿고
경상도 경주라는 낯선 곳으로 왔었다.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도 슬퍼지고, 마음이 짠하다.
신혼집은 13평 정도의 작은 빌라였다.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5층 빌라였는데 난 5층에 살았다.
허허 벌판에 그 빌라만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남편은 아침에 출근을 하면 밤 10에 퇴근을 했다.
남편이 출근을 하면 나는 하루종일 남편만 기다렸다.
작은 방이 2개 였었는데 보일러비가 아까워서 방 1개만 틀고 지냈다.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잘 먹지도 못하고
책을 읽고 천자문을 공부를 하며 긴긴 시간들을 보냈다.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가 않았다.
아는 이가 없어서 밖에 나갈 일도 없었다.
밖에 나가면 논 밭 밖에는 없어서 오히려 춥고 무서웠기 때문에
집안에만 있어야 했었다.
빌라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턱대고 말투가 확실히 다른 임신한 새댁이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곳에서 내가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슬프고 외롭다는 생각이 많은 시간동안 나를 지배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나에게 인생의 전환이나 인생의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18년이 지나고 보니 한꺼번에 인생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지금도 물론 부자는 아니다.
어느덧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그들과 함께 하다 보니 삶이 조금씩 달라졌다.
여행이라는 것도 함께하고
맛난 음식도 같이 먹으러 다니고
공연도 함께 보러 다니다 보니
이제는 조금 덜 외롭다. 덜 슬프다. 덜 힘들다.
이맘때쯤 추억의 겨울 딸기를 먹고 나면 마음의 봄이 오기 시작된다.
늘 외롭고 힘들면 사는 것이
지치겠지만
인생은 내리막길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리막길 끝에 반드시 오르막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힘듦이 주는 것도 감사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