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순진하게(?) 촉나라를 참 좋아라했었습니다. 이문열 삼국지만 3번을 정독했고 수많은 게임 등을 통해 인물과 무기 등을 외우고 PC통신을 통해 (인터넷 아님 주의) 삼퀴라 불리는 삼국지 퀴즈에 열을 올렸죠.
그러다 성인이 되어 삼국지 유적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비가 죽은 백제성을 갔고, 오늘 소개하는 당시 촉나라의 수도이기도 했던 바로 성도
바로 이 성도에는 유비의 묘가 있습니다. 제갈량 공명을 모시는 무후사와 함께 말이죠.
이 곳에는 제갈량과 함께 유비, 관우, 장비의 형상이 있고 중국인들도 이 곳을 찾아 그들을 기립니다. 중국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삼국지 자체의 인기는 우리나라보다 시들합니다.
아래는 제갈량이 각종 전술과 국정을 홀로 고민하던 바로 그 연못, 공명원의 모습입니다. 저도 이 곳을 걸으며 그 간의 고민들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지요.
그리고 유비의 묘는 상당히 큽니다. 당시에 광각렌즈와 카메라를 가지고 가질 않았던 게 아쉽기도 했지만 있었어도 다 담기 힘들었을 것 같네요. 묘 주변에 쳐진 돌담 때문에 드론이나 항공샷으로만 전체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비의 사후,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였으나, 당연히 유선에게 황제 자리가 넘어갔고, 유선은 제갈량에 의지하여 정치를 했습니다. 위 정벌을 위한 두번째 출사표를 올린 제갈량은 결국 위나라를 정벌하지 못하고 오장원에 지는 별이 되었지요.
이후 촉한이 멸망당하고 대부분의 후손들이 몰살당했으나, 유선의 동생인 유영의 손자 유현이 살아남아 가문을 지킨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여행은 2014년 가을에 다녀온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것으로 제 블로그에 포스팅했었던 링크도 남겨봅니다.
무후사 후기 https://jino.me/2710
유비의 묘 후기 https://jino.me/2725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