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배가 제법 있으셔서 한 세대 정도는 차이가 날듯 싶은데, 자식벌에 해당하는 우리 젊은이들과 곧잘 어울리던 그 분을 처음엔 그저 은퇴한 엘리트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저물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품행을 보면 분명 식자 층이었고 매너도 아주 좋으셨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아무개 장관".. "아무개 장관" 이름을 거명하며 아주 친한 친구라는 말씀도 하시던 군요. 사회적 배경도 훌륭하신 분이었지요.
그런 분이 그 연배에 어떤 연유로 질풍과 같은 시장에 나와 찬바람을 마주하며 풍랑을 겪는지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그저 노후에 오락거리 정도로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교분이 생기다 보니, 어느날.. 시장에 발을 들여 놓게 된 사연을 털어 놓으시더군요. 이 분은 IMF 사태 이전에 천억대 부동산을 소유하고 계셨답니다. 있는 분들은 있는 분들끼리 어울린다고, 다른 천억대 부동산 거부 세 사람과 함께 넷이서 아주 절친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의 부동산 투자란 것이 예를들어 100억의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건물을 사서 임대를 주고, 임대료를 모아서 다시 재투자 하고.. 이렇게 몇회전을 하다보면 원래 자산의 4배 까지.. 즉 400억대 투자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시의 부동산 투자 상식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친구분 중 단 한 분은 건물을 사서 임대를 주고는, 그 임대료를 다시 부동산에 재투자를하지않고 그대로 은행에 예금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나머지 세 분은 그 친구를 만날 때 마다 "천치" "바보" "등신" 이라며 갖은 말로 놀려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고 합니다. 고분고분하고 착하던 세입자들의 등쌀에 그만 그의 아내 분은 기함을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세입자의 돈으로 레버리지를 늘려서 강력한 부동산 롱포를 구축하였던 이 분과 그의 두 친구는 전대미문의 외환위기 사태로 그렇게 허망하게 쓰러졌다고 합니다. 세 분 모두 천억대의 자산을 모두 날렸다고 합니다.
'천치' '바보' '등신' 친구만 빼고 말입니다. 그 '등신'친구는 외환위기로 똥값이 되어버린 부동산을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마구 줏어담았다고 합니다. 그 '등신'만 살아남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이어오신 그 신사분은 이미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풀 레버리지가 남긴 전대미문의 가혹한 경험은 그 분께 너무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잃어버린 자산을 찾아야 했고, 그래서 험난한 시장에 발을 들여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레버리지는 양날의 칼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만큼만 사용해야 할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