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How To Steal A Dog, 2014)
하루에 하나씩은 행복한 일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의식주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금세 짜증이 난다. 하루 푹 쉬었더라도 배가 고프면 짜증이 나고, 취직을 했더라도 내 집이 없으면 속상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주(住)를 얘기한다. 이 영화는 집이 없어 차 안에서 생활하는 세 가족이 중심인물로 등장하는데, 웃기면서도 마음이 쓰인다. 폐가에 몰래 들어가 집을 꾸미려 '홈 스위트 홈'이 쓰인 발매트를 사는 엄마의 모습이 그렇다.
전혀 집이 생각나지 않을 것 같은 제목은, '비싼 강아지를 훔치고, 사례금을 받은 후 집을 사겠다는' 뜻이다. 발칙하면서도 귀여운 이 상상은 의외로 치밀하게 진행되는데, 그래서 더욱 몰입감을 높인다. 평당 오백만 원을 '평당'이라는 지역의 전세가로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돕는 어른들. 물론 아이들을 돕는 피자 배달부나 노숙자 할아버지는 다소 말이 안 되는 설정일 수도 있으나, 아무렴 어때? 라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한다. 이 영화가 정말 현실적인 영화였다면, 아이들은 금세 좌절하고 말 테니까.
영화를 보다 보면, "요즘 집 없는 사람이 어딨다고"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말을 듣는 아이는 움찔하는데, 듣는 나도 속상하다. 일 년에 한 번씩 이사해야 하는 월세방을 '내 집'이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 원룸에 살기 전에도 배낭 하나와 캐리어 하나로 고시원을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그때가 가장 우울했다. 나만의 독립적인 공간 없이, 공용 샤워실에서 조용히 목욕하고, 옆 방에 들릴라 옥상에 올라가 통화를 하던 때. 지방에서 함께 올라온 친구와 서로를 '민달팽이'라고 칭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벽에 구멍 하나도 뚫지 못하고, 또 이사갈 걸 대비해 큰 짐을 넣지도 못하는 신세.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나, 자신만의 시공간도 간절히 필요하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취미를 즐길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물질적인 집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방'이 없다면 '홈 스위트 홈'이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물론 가족과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공간을 계속해서 침해받는 이는 무의식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일 것 같다는 의견이다. 나만 쓰고, 나만 볼 수 있는 내 물건. 그리고 그 물건을 안전하게 놓을 수 있는 내 방, 나의 집. 우리는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
집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세 가족이 안쓰럽다. 모두가 집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므로. 그렇기에 자신의 공간을 위해 타인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버리려는 아이를 옹호한다. 그러나 이건 명백한 범죄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못하다. 하지만 이해가 되기에 먹먹하다. 그 행동을 꼬마가 해서 그럴까. 아마 어른이 돈을 벌기 위해 개를 훔치는 영화였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
결말은 환상적이다.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요정님과 같은 부자의 힘이 들어간다. 더는 아이가 힘들게 개를 훔치지 않아도 되기에 마음은 편안하나, 부자의 도움이 있어야만 집을 얻는다는 결말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억지로 눈물을 쏟게 하는 장면이나, 과도한 아역의 연기가 없다. 홈 스위트 홈을 찾은 아이들처럼 우리도 저마다의 홈 스위트 홈을 찾을 수 있기를.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