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Review :
가족이기에 말할 수 없는 비밀
에브리바디 파인 (Everybody's Fine, 2009)
요아
영화 리뷰글은 「소공녀」 이후 1년 만이다. 그간 마음에 드는 영화가 없었느냐 하면, 땡. 다만 고민이 머리를 옥죄어 오는 현실이라 느낌을 한 편의 글로 다듬을 만큼의 힘이 생기지 않았다. 별 다섯개의 영화를 오랜만에 마주할 때면, 영화 막바지에 흐르는 곡에 맞춰 잠시간 사색에 빠진 후 노트북을 덮었다. 그렇게 영화의 수는 쌓여갔지만 그로 인한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더뎌졌다. 그러자 영화 역시 멀어졌다. 왓챠와 넷플릭스 정기결제를 끝냈다.
짧은 영상만 즐기는 세태를 비판했건만, 누구보다도 그 흐름에 안착한 건 다름 아닌 나였다. 흥미를 끌 만한 자극적인 클립을 한데 모아놓은 영화 유튜버들이 상당했다. 그들의 영화 소개 영상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영화 감상으로 이어졌지만, 압축되지 않은 길고 지루한 장면들에 답답함을 느꼈다. 인생 영화라 유명한 「포레스트 검프」도 미루고 미루고. 눈물로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일 년 전의 나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여느 때처럼 유튜브를 켠 날,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질 때 보면 좋은 영화>라는 제목의 영상을 발견했다. 마침 나는 매우 열렬히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니 영화도 보기 귀찮았을 때였으므로 만일 영화가 별로라면 구독을 취소하겠다는 이상한 심보를 가진 채 영화를 틀었다. 10년도 넘은 영화, 에브리바디 파인(Everybody's Fine). 접근성과 흥미를 가차없이 떨어뜨리는 제목과 포스터의 콤보에 잠시 주춤했다.
이미 예상했겠지만, 내용은 제목과 달리 아무도 괜찮지 않다. 현재로서는 다소 유치한 반어법적 제목이지만 그를 뛰어넘을만한 훌륭한 영화였다. 그래, '훌륭하다'는 말은 여기에 쓰여야 한다.
한국인에게는 「인턴」으로 유명한 할아버지, 드 니로(극 중 프랭크)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사는 노인. 연말에 파티를 열겠다며 자녀 넷을 초대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고. 여기까지는 참 뻔하다. 그런데 이 뻔한 장면은 10분 안에 끝. 프랭크는 바로 미국 전역에 퍼진 아이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짐을 싼다. 폐가 약해 비행기를 타지 못하므로 기차와 버스로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리며.
전교 1등인 줄 알았던 손자는 그리 공부를 잘 하지 않고, 분명 화목한 가정을 이룰 거라 생각했던 딸은 이상하게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 지휘자라 생각했던 아들은 타악기 연주가. 심지어 프랭크를 보기 위해 연주장에서 빠지더라도 음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역할이었다. 프랭크는 아쉬움을 숨길 수 없고. '나는 널 이렇게 가르쳤는데, 네게 바친 돈만 해도 어마어마한데ㅡ'라는 표정이 얼굴에 뚝뚝 묻어 나오고.
나는 가족 영화를 싫어하는 편이다. 타인이었더라면 응당 피해 다녔을 만한 단점들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해야 하는 사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는 하지 못 하는 말을 부담 없이 내뱉는 관계를 숱하게 마주했다. 가족이라는 프레임에 덧씌워진 자비로운 사랑. 나는 그 가치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가족이라 겪는 약점과 단점을 여실히 담아낸다. 신기한 점은 자녀가 아닌 아버지, 프랭크의 시선으로도 장면을 바라볼 수 있음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글로 큰 성공을 할 것이라 확신하는 부모님 아래서 자라고 있으므로 자녀에게만 감정 이입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철저한 훈육으로 날 키워낸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 해외 영화인데도 한국에서 나고 자란 조그만 나의 가정이 이입된다는 것에서 오는 이상한 기분. 이상한 기분투성이다.
영화를 본 직후의 나는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의 글귀와 캡처본을 올렸다. 내 표현의 한계를 느낀 영화. 그러나 일요일의 새벽, 이렇게 스팀잇에 올리는 한 편의 글을 통하여 느낌을 정의내릴 수 있었으므로 이 글은 내게 큰 성장의 동력이다. 물론 영화 역시도.
당신은, 괜찮나요. 정말 잘 지내시나요.
"벽화를 그리는 페인터는 개들이 와서 오줌을 싸. 넌 화가가 될 거야.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사람의 인생을 바꾼단다. 그럼 넌 뭐가 될래?"
"화가요."
"그렇지, 화가가 되어야지. 열심히 공부할 거지?"
"네, 아빠."
"날 자랑스럽게 해줄 거지?"
노력할게요,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