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게, 20대가
Sagoda Q. 20대를 어떻게 걸어 오셨고, 걷고 계신가요?
교복을 입은 날부터 입지 않아도 혼나지 않게 된 날까지, 내내 20대를 꿈꿨습니다. 제게 20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른이자, 가치관이 굳건한 선배며, 멋진 커리어 우먼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로망은 스무 살이 된 해부터 와장창 무너졌습니다. 흠, 얘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시리라 믿고 써볼게요. 저는요.
1월 1일, 동갑내기들은 주민증을 들고 밤거리를 활보했을 날에 나는 홀로 방에 있었다. 합격증을 들고 있었으나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싶었다. 어쩌다 듣게 된 부모님의 대화가 머리를 맴돌았다. 집을 팔아야 하겠지. 다행히 도민을 위한 장학금을 발견해서, 집문서를 건드리지 않고도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보증금이 없어 고시원에 살아야 했다. 서울의 중심가임에도 한 달에 28만 원이라는 말에 선뜻 방을 계약했다. 후에 알게 된 건, 한국인이 나뿐이었음이다.
대학은 내가 꿈꿨던 교육의 장이 아닌 듯했다. 졸업 요건을 위해 억지로 교양을 듣는 게 말이 되는 거야. 학교에 전화를 걸어 자퇴 절차를 물었다. 친구들이 소매를 잡았다. 2학년부터는 전공 수업이 더 많대. 턱걸이로 다음 학기의 장학금까지 확보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딱 1년만 지내보고 그래도 아니라면 자퇴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에 한 끼는 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당연히 몸이 약해졌다. 그래서 20대 초 내 별명은 ‘행복한 좀비’였다. 애가 곧 쓰러질 듯 비실비실한데, 표정은 또 밝다고.
아냐, 그런데 그건 너희들 앞에서만 그런 건데. 사실 나는 밤마다 울었거든. 꿈을 이루겠다며 자신 있게 올라왔는데 너무 잘난 애들이 많았다. 분명 나는 독수리인 줄 알았는데 그건 표선면 촌구석에서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서울에서는 날파리에 가까운 듯한 기분. 스무 살의 나는 여유롭게 대학가 잔디 위에서 맥주를 마시리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불안감에 잠식되어 눈물을 흘리는 어른이었으니. 그 모습이 괜스레 슬프고 또 처량해서 울었다. 끝나지 않는 반복의 굴레 같았다.
20대에는 놀아야지, 그때 아니면 시간 없다? 그렇구나, 수긍하면 다음 날엔 또 다른 선배가 입을 열었다. 놀면 미래가 없어. 양극화된 조언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와서 답을 말해주듯 알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 20대는 어떻게 살아야 해요? 어떤 말이 진짜 답이에요? 20대라는 나의 시험지에도 해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 진짜 잘 걸을 수 있는데. 이제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20대에 들어서니 뭐든 홀로 감내해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이 들었다. 사대보험을 받지 않고 알바를 했는데 사장이 잠수를 탔다. 연회장 알바에서는 성희롱을 당했고, 출구조사 알바 때는 욕을 들었다. 아득바득 사회를 독학했다. 다행인 것은 좋은 사람도 참 많이 만났다는 것. 울고 있노라면 토닥여주는 이가 있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과 안 좋은 사람을 만나고, 기쁨과 좌절을 겪으며 슬슬 알게 됐다. 20대를 어른이라 일컫는 이유는, 답안지가 없어서구나. 그러니 내가 마음 편히 걷고 싶은 길을 가면 되겠구나. 다른 이는 갸웃할지라도.
그래, 20대는 답안이 없다. 어른이니까, 이것도 저것도 답이 될 수 있는 거였어. 누군가에겐 실패라 여기는 일이 내게는 성공일 수도 있고, 당연히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 그러니 우리 각자의 20대를 잘 걷다가, 50대쯤 다시 만나 나눠볼까요. 저는 이랬는데, 여러분은요? 여러분의 길은 어땠어요?
sagoda Q.
20대를 지났다고 하더라도, 20대를 걷는 중이라 하더라도
또래와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20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 자신의 20대를 어떻게 보내셨는지, 어떻게 보내시고 계신지도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