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 가 개봉을 하고 나서..
졸지에.. 프로듀서가 되어버린.. 나는..
변영주 감독과 함께..
<낮은 목소리>, 극장 개봉! 과..
<낮은 목소리>, 지방 순회 상영! 을 진행하면서..
서동진의 커밍아웃과 성소수자 모임! 을..
새로운 다큐멘터리 영화의 기획으로 잡고..
성소수자들과 만나고..
게이·레즈비언 bar 에 가기도 하고..
트렌스 젠더들과 만나고.. 여보 클럽까지!
활발하게 취재를 하면서..
독립영화협회 회의! 에도 참석을 하는 등..
나름은.. 아주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때만 해도.. 우리는.. 절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기록영화를..
또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짧은 생각. 이었을지는 몰라도.. 당시에는..
다시 할머니들을 소재로 이용(?!) 하고 싶지 않았고..
단순히.. 재탕. 이나.. 동어반복. 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며..
솔직히..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할머니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새기고..
그 아픈 기록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많은 관객과 나누는 일이.. 우리 자신에게도..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일. 이었기에..
그러한 작업을.. 또 한다는 것은..
정말 엄두조차 안 났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할머니들과..
깊게! 맺었던 관계!! 만은.. 포기할 수 없어서..
매주, 수요시위! 에 동참을 했고..
나눔의 집 에도.. 계속 찾아갔었는데..
1995년, 연말을 앞둔 겨울에.. 갑자기..
우리가 사랑했던, 강덕경 할머니! 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으시면서..
모든 상황은.. 급반전! 을 맞게 되고야 말았다.
“이대로 잊혀지는 게.. 두려우니..
죽을 때까지.. 끝까지 영화에 기록해 달라!”
마치 유언과도 같았던.. 할머니의 간절한 요청에..
우리는..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동안 진행했던 모든 일들은.. 올스톱! 되었고..
그날부로.. 새로운 기록이 시작! 되었으니..
<낮은 목소리2> 는..
강덕경 할머니의 “의뢰” 를 받아서..
철저하게..
강덕경 할머니로부터 시작해서..
강덕경 할머니로 끝나는..
그런 기록영화가 될 터. 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서서.. 기록하는 사람들. 일 뿐이었고..
아무리 할머니들과 가까워지더라도.. 그것이..
할머니들의 시선과 목소리. 그 자체일 수는 없으니..
이러한 성찰. 로부터.. 우리는.. 불끈!
다시 시작할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