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외동딸이던 시절의 가족 사진이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우리 아버지의 첫 직장은..
여자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의 꿈은 사진작가. 였으니..
엄마의 기억에 따르면..
방학만 되면, 작품 사진을 찍겠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려서..
한달쯤 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땐..
완전 거지꼴. 이었다고 한다. ㅋ
그리고, 찍어온 사진은 죄다.. 산과 들과 강과 새들..
그랬던 아버지가..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태어나자..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어차피 사진작가로도, 사회 선생님으로도..
수입은 너무 빤- 하거니와..
그래가지곤 도저히 가장 노릇을 못하겠다.. 싶어서..
사업을 하는데.. 기왕이면 인쇄를 하자..
어차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팔자가 아니라면,
사진을 최대한 잘! 인쇄하는 기술을 배우자...
로 진화,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충무로의 인쇄소를 오가며.. 식자 등을 배우셨고..
그 일이 천직이 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다.
아버지의 몸에 흐르는..
역마살이 낀 사진작가의 피...
어쩌면 그 피가 나에게로 이어져서..
내가 영화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영화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너무나도 반대를 하던 아버지를 향해서..
엄마가 원망스럽게 던진 말도 그랬다.
그 피가 어디 가겠냐고.... ㅋㅋ
단지 차이가 있다면..
아버지는 지독한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여.. 꿈을 반쯤은 접어야 했지만..
나는 절대 타협하지도, 꿈을 접지도 않았다는 거!
근데, 내가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또 결국.. 너무나도 든든한 아버지.. 라는..
비빌 언덕. 이 있었던 덕분. 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지금도 아버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전혀 다른 일을 해주기 바라시지만..
그럼에도 아버지..
당신의 그 뜨거운 피를 이어받은 큰 딸이..
부끄럽지 않도록.. 조금은 자랑스러우실 수 있도록..
좋은 영화 만들어서 보답할께요... 반드시! 불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