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이수근이 두 명 있다.
고음불가의 이수근, 탈북자 이수근.
아니 탈북이라 하지 말고 '방한'이라고 해보자.
이수근이 방한을 했다. 탈출이라는 .
1967년 3월22일이었다.
그는 북한의 유일한 통신사 조선중앙통신 부사장이었다.
꽤 거물급 북한 언론인이 판문점에서 남쪽으로 왔다.
사진 크레딧을 보니 '김용택 기자'라는 이름이 나온다.
1968년 2월1일, 사이공 거리에서 남베트남 경찰청장 응우옌응옥로안이베트콩 용의자를 권총으로 즉결처형하던 장면을 촬영했던 <동아일보> 기자다.
물론 사람들은 <AP> 애디 에덤스가 찍은 사진만 안다.
김용택 기자는 권총 발사 순간의 장면만은 너무 끔찍한 상황이라 얼굴을 돌리는 바람에 찍지 못했다고 한다.(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남베트남 군인들이 방해해서 찍지 못했다'는 본인의 증언이 나오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돌아가셨으므로)
애디 에덤스는 그 사진으로 유명해졌고,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그 사진이 세계에 타전되면서 미국과 세계 전역에서는 반전운동의 불꽃이 튀었다.
아무튼 다시 이수근.
신문 속의 사진은 나름 김용택 기자의 특종사진이다.
이수근은 훗날 베트남을 방문한다. 캄보디아를 방문하기 위해 베트남을 거친 거였다.
물론 다 몰래몰래.
내가 보건대, 분단 이후 가장 비극적인 북한 출신 남한 방문자였다.
그러니까 북한에서 대충 사시지.
남한 정부는 이때까지만 해도 김일성한테 한방 먹였다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남한 정부는 이수근을 얌전히 놔두지 않았다.
남한에 살 맛이 안 났다.
불쌍한 이수근, 정말 불쌍한 이수근.
1969년 스크랩에서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