쥔장: 이봐 진이! 우리도 입춘대길 붙여야 되는 거 아냐?
황진이: 글게요. 그런데 그냥 흔하게 입춘대길 건양다경 보다는 입춘시를 붙여놓으면 어때요?
쥔장: 좋아! 읊어보아라.
황진이: 아니 뭐 꼭 제가 짓는다는게 아니라...제가 그렇게 척척 시가 나왔으믄 진작에 서화담을 꼬시고 말았죵!
벽계수한테 나불댄 그 시도 얼매나 연구해서 지어낸 건데유!
아! 손님인가...? 왠 삿갓?
삿갓: 지나가던 과객이온데 따끈한 숭늉 한 사발 얻어 마실 수 있겠소?
황진이: 잘 됐다. 시 지을 줄 아시쥬? 삿갓 쓰면 원래 시가 줄줄 나온다는 소문도 있든디?
한번 간단하게 읊어볼래유? 그 삿갓에 대해서요.
삿갓:
가뿐한 이 삿갓 빈 배와 같아
한 번 썼다가 평생을 쓰게 되었네
취하면 벗어 꽃나무에 걸고
흥겨우면 들고 다락에 올라 달구경하네...
쥔장: 훌륭하오. 들어오시구려. 진아 숭늉 좀 데우렴. 깍두기도 썰고.
삿갓: 고맙소이다. 거 숭늉에 쌀알갱이 좀 수북히 해주시구려. 어여쁜 아가씨!
황진이: 어여쁘단 칭찬 아끼지 않으시니 소녀 쌀을 모다 숭늉에 퍼드리리다.
글찮아도 우리가 입춘시를 지을라켔는데 잘 오셨네유!
삿갓: 가만...어디선가 시를 흩날리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잖소? 아! 이 분이로군. 당신의 시어에는 봄이 난만하게 느껴졌소만...다시 한번 들어볼 수 있겠소?
@sunghaw :저는 승화라 합니다. 이 마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부끄럽군요. 하지만 듣고자 하시니 흥얼거림으로 아시고 흘려들어 주십시오.
봄이 온다하니
봄의 모든 가솔이 더불어 온다하네
꽃처럼 잠드는 봄이요
달처럼 눈 뜨는 봄이어라
잠시도 삶이 아닌 적 없다하나
문득 아쉬워 두리번 찾아보네
그래!
꽃이 벙그는 아침
달이 뜨오른 저녁이 다르다하나
넘보아도 좋은 생 한 켠쯤
남겨뒀으면 좋겠네
황진이: 대,대박! 우리 손님 중에 저런 시인이 있었다니~!
삿갓: 오오....흥겨워지네요! 나도 댓구 해보리다.
春風三月誦分明 봄바람 정취를 줄줄 읊조리니
客駐征驂忽有情 나그네 길 멈추고 문득 정이 생기오.
승화:
難掩茶室十目明 찻집 안에서는 뭇사람 눈 피하기도 어려운 법,
有情無語似無情 정은 있어도 말 못하니 정 없는 줄로 아소서.
황진이: 와....듣는 내 몸에 전류가 흐르네! 조선시대의 밀당을 보는 것 같오!
삿갓: 하아...기가 막힌 대답이요. 내 가슴이 더욱 뛰는구려! 마지막 절구를 채우리다.
虛閣夜深人不識 빈 집에 밤이 깊으면 아무도 모를테니,
半輪殘月已三更 오늘밤 자정이면 반달도 지게 될 거요.
황진이: 뭐뭐시여? 쥔장! 저 삿갓께서 지금 확실히 수작을 찐하게 건네는거 맞쥬?
쥔장: 쉿! 여인의 댓구를 들어보자!
승화:
踰墻鑿穴非難事 담 넘고 벽 뚫어 들어오시긴 어렵지 않겠지만,
己與農夫誓不更 내 이미 농부와 '불경이부' 다짐했다오.
삿갓: 아.....
황진이: 자 숭늉 나왔슈! 구경 한번 고급지게 잘했네요!
삿갓: 운치에 배부르고 시에 취하여 이미 방랑시인은 넋을 잃은 듯 하오.
승화께선 어떻게 이 봄을 맞으시려오?
승화: 내 봄을 극진히 사랑하여 봄이 오는 것이지요.
그 봄 안에서 잠드는 날 많아서 꽃이 피었고요.
꽃의 품으로 파고드니 문득 나비가 날더이다.
삿갓: 나그네 배갯머리 꿈은 산란하고
서리 찬 달빛만 더욱 외로워라.
푸른 대, 푸른 소나무는 절개를 자랑하나
복사꽃 흰 배꽃은 봄에만 피지 않던가?
승화:
그대의 노래 파도처럼 밀려오니
맨발의 말들이 초록병을 앓는구려.
어느만치 가다 멈춘 얼굴이신지
영혼만 그대 안쪽으로 보내보오리다.
삿갓: 너무나 어름다운 시간이었소. 이 날을 고이 흉중에 싸서 추운 방랑의 길을 견디리다. 그럼 이만...
쥔장: 벌써 일어나시게요? 진이가 하얀 술을 사러 갔는데...
삿갓: 이화주 말이오? 아..나를 갈등의 늪으로 밀어넣으시네.
승화: (일어서며) 삿갓님! 또 오세요.
머지않아 홍매화가 필테구
난 아직의 꽃봉오리를 살그머니 따다
뜨거운 물이 담긴 찻잔에 올려서
향과 색을 삿갓님께 드리오리다.
부디....이월이 시작하는 사랑처럼 꽃이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