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jisyndrome -수지는 냉장고 안을 정리하다가 비척비척 취한듯이 찻집으로 들어오는 고갱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
고갱: 당신은...누구요? 황진이 어디 갔지? 난 오늘 마지막 이야길 하러왔는데..그녀 앞에서...
수지: 저는 수지라고 해요. 오늘은 진이 언니 쉬라고 했어요. 제가 고갱님을 보고싶었거든요.
물어볼 것도 있고... 그런데..마지막 이라고요?
고갱: 내 마지막 작품, 그리고 나를 대표할 작품을 이야기하기 위해 난 다시 이 찻집에 온거요. 아마...다시는 올 일이 없겠지. 난 이 작품을 이야기하지않곤 견딜 수 가 없었어. 당신은 뭐가 궁금한거요?
수지: 당신은 거대한 원초적 의문에 직면했다고 했어요. 그 답을 얻었나요?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그게 바로 원초적 질문이요!
더 이상 근원이 있을까? 이 작품 수지는 자세히 보았소? 안보았을거야!
수지: 자세히 보진 않았어요. 고갱! 당신이 오늘 그 이야길 해주실거군요?
고갱: 나이아가라를 나이지리아폭포라고 불러도 좋아! 하지만 모름지기 작품을 볼 때는 그 화가의 영혼을 씹어삼킬듯이 보아야 하는거요. 뭐로 씹나? 눈으로 씹는거요! 두 눈 똑바로 떠요! 어서...
수지: 아,알았어요.
고갱: 이런 제기...이정도 해상도밖엔 없단 말인가? 어쨌든 그림 우하단에 아기가 태어난 장면이요. 뭔가 이상하지 않소? 이런 아기는 보통 엄마품에 안겨있는것이지. 헌데 여기 이 여인들...누가 엄마요? 그저 담담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거나 등 돌리고 있지.
그 누구도 특별할거 없어. 신? 누구도 새로 태어난 인간을 축복하지않아. 신(god)은...마치 저 검은 개(dog)처럼 방관하고 있소.
뭐요? 수지! 당신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수지: 누구나 자기 보고싶은대로 세상을 보겠죠. 그 다음은요?
고갱: 성장하오. 그런데 이 소년 뭘 먹고 있지?
수지: 사과?
고갱: 그렇소! 중심부에 이 존재가 바로 사과를 따고 있지! 사과는 금단의 열매...즉 우리의 원죄요! 이게 지랄이야. 우리는 백번 태어나도 또 그 사과를 따먹을거란 말이오!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사과는 우리의 호기심이며 그 호기심이 야기한 지식이요!
그 지식을 얻은 인간은 부끄러워하고 고통스런 삶으로 기어들어가지.
수지: 어쩌면....ㅠㅠ
고갱: 아니 왜 눈물을 보이는거요? 당신도 이 삶에 던져진 고독한 생명임을 자각하게 된거요?
수지: 아뇨! 당신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견디고 살아왔는지가 느껴져서 그만...ㅠㅠ 당신은 답을 얻지 못했어요. 그렇죠?
고갱: 답...? 난 질문을 던지는 자요. 저 우주에, 신에게 난 내 인생을 걸고 질문 하나를 던졌지! 답은 후세의 사람들이 들을지 어쩔지 모르겠고...난 이 작품을 완성하고 산으로 들어가 비소를 잔뜩 삼켰어. 독한 술과 함께-그게 내가 생각한 어울리는 죽음이라고 판단했지.
수지: 안돼요! 그렇게...삶은 쉽게 접는게 아니라구요!
고갱: 수지..당신이라면 살아서 진창에 더욱 구르는걸 선택하겠소? 난 매독에 걸려서 문이 문드러져가고 있었어. 우울증은 나의 벗이었고 불면은 날 미치게 만들었고..탈출구는 술이었지. 살아야 하는건가? 제길...당신같은 사랑의 천사들이 기도라도 한걸까? 난 비소를 다 토해내고 죽는데 실패했소. 살아남은 난...
수지: 당신은 지금 과거를 바꿀 수 있어요! 뭔가 가치있는 삶으로 바꿔봐요. 이제라도. 개죽음은 비열한 거라구요!
고갱은 말을 잊은듯이 수지를 바라보더니 허공을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고갱: 그래야지. 그래야 그 곳의 여인들에 대한 은혜를 갚는거야. 타히티의 태양에 진 빚을 갚는거야. 난...그 때부터 싸웠소.
불평등하게 수탈당하고 천대받는 원주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싸웠어. 선교사들...종교를 전파한다는 미명으로 원시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온통 더럽히고 말았어! 가증스럽게도...난 공권력과 싸웠지. 경찰을 두드려팼고...감옥 가기 직전에...
신은 마지막 자비를 배풀었지. 심장마비라는...!
수지: 당신은 보았군요! 결국-
고갱: 보았소! 원시의 삶에 그것이 희미하게 남아있었소. 난 황색 그리스도를 보았어!
고갱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난 이제 하고픈 말을 다 했소. 내 마지막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요. 가야하오. 뒤 돌아주겠소? 설거지가 남아있는것 같은데..."
수지는 뒤로 돌아서서 싱크대를 향했다. 그리고 커피 잔 하나를 들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는 들릴듯말듯 속삭였다.
'잘 가요. 고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