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게시물 말미에 더 적으려다가 포기한 내용에 대해 밥 먹으면서 몇 글자 더 적어 봅니다. 글쎄요. “화폐에 관해 물어야 할 질문들”이라는 시리즈가 될 만할지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은행 예금은 화폐인가?”
우리는 흔히 은행에 넣어 둔 돈을 내 돈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내 돈일 뿐, 엄밀하게는 내 돈이 아니다. 우리가 은행에 돈을 맡기고 받은 통장(및 그것의 인터넷 버전인 인터넷뱅킹 계좌)은 거기 적힌 금액의 돈을 예금주인 우리가 요구할 때 돌려주겠다고 약속한 (은행 입장에서는) 채무 증서, (예금주 입장에서는) 채권 증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은행에 넣어 둔 돈은 내 돈이 아니라 은행 돈이고, 예금주인 나는 그 돈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채권 증서’로 ‘계좌 정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첫 번째 질문, “은행 예금은 화폐인가?”에 대한 엄밀한 대답은 “아니다. 은행 예금은 채권/채무 증서다”가 되겠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 우리가 은행에 돈을 넣는 행위는 집에 있는 금고에 돈을 넣는 행위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우리가 은행에 빌려 주는 대출이다. 그 대출의 대가로 ‘예금 이자’를 받는다.
그러면 위 질문을 바꿔보자.
“은행에 넣어 둔 내 돈은 ‘법화’인가?”
오잉? 질문이 좀 야릇해지는 걸?
아니다. 야릇할 것 없다. 답은 똑같다. 그 답은,
“은행에 넣어 둔 돈─일반화해 말해서 은행 예금─은 법화가 아니다. 그것은 예금주가 요구할 때 법화로 지급해 주겠다는 약속, 즉 채권/채무 증서다.”
가 되겠다.
어? 이상한데? 계좌 이체로 내 돈을 송금해서 지불하는 것은 법화를 지불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법화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금주 A의 채권증서 상에 있는 숫자를 예금주 B의 채권증서 상에 있는 숫자로 옮기는 것이다. 즉, 법화가 A에서 B로 이동하는 게 아니다. 신용상의 한 숫자에서 지불액만큼 뺄셈하고, 신용상의 다른 숫자에 그 금액만큼 덧셈으로 보태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케이? [여기까지 질문 있으신 분들, 질문해 주시면 환영합니다!!]
정리해 두자.
은행 예금은 화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화폐로 간주하는 채권/채무 증서다.
용어를 바꿔, 반복하자.
은행 예금은 법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법화로 간주하는 채권/채무 증서다.
오케이? [여기까지 또 질문 있으신 분들, 환영합니다. 예컨대 “‘간주한다’는 게 무슨 뜻이죠?” 도 환영합니다.]
또 하나의 관련된 질문: “내 급여계좌로 들어오는 돈은 화폐인가?” 달리 물어도 마찬가지. “내 급여계좌로 들어오는 돈은 법화인가?”
어떻게 생각들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