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덤벙거리는 성격에 내 것을 잘 챙기지 못했었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걱정에 우산을 가져 갔다가도 비가 오지 않으면 당연히 우산을 두고 집에 오곤 했다. 우산뿐만 아니라 신발가방, 숙제, 준비물 등 많은 것들을 챙기지 못했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기차타러 가는 그 순간까지 폰은 충전기에 꽂고 전화나 업무상 사용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만삭의 몸으로 홀로 아이를 돌보며 출근까지 한 색시 앞에서 폰 만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스팀잇을 하지못한건 아쉬웠지만 덕분에 가족의 얼굴을 더 많이 보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임신 8개월차에 들어서니 색시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나오고 있었다. 첫째 때 보다 많이 나와 나도, 색시도 걱정이다. 혹시 배가 트면 평생을 속상함에 살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음같아서는 하루 온종일 색시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귀여운 첫째가 심심해서 안달이다. 요즘은 역할극에 빠져 읽었던 책 내용을 역할에 맞춰 놀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빠의 전매특허인 과격하게 놀아주기도 아주아주 좋아 한다. 첫째와 즐겁게 놀다가도 문득 힘들어 하는 색시의 모습이 눈에 비친다.
2월말 이사를 준비하느라 마음이 바쁘다. 내가 일자리를 구했고, 색시는 출산 후 휴식이 필요하기에 내 직장이 있는 부산 근교로 이사가려 한다. 첫만남부터 소리치던 집주인이지만 돈이 부족한 우리는 계약을 물리겠다는 말도 못하고 들어가는 거라 더 꼼꼼히 준비해야겠다는 부담도 있다. 장거리 이사에 이사 날자도 안맞아 보관이사까지하니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다. 나도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색시는 걱정이 더 많은 사람이기에 별 말은 안해도 표정에서 근심이 떠나질 않는다. 그저 행복한 사람은 우리집에 아가야 밖에 없다. 너라도 행복하니 참 다행이지만 아빠는 엄마가 걱정된단다. 아빠가 더 능력있으면 좋으련만.
첫째 유치원도 걱정이다.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으라고 한다만 어디 낳기만 하면 되는일인가? 키우며 걱정할 거리가 한 두 개가 아닌 것을. 당장 첫째가 유치원에 가야하는 데 이사가는 곳에 신도시 개발로 아이들은 많아지고 유치원은 적어 대란이 벌어졌었다. 사립유치원 50명 모집에 700명이 지원했으니 말 다했다.(한 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지역 대부분의 유치원에서 발생한 일이다.) 대란에 민원이 많이 발생해 다행이 병설유치원이 추가 편성되고, 자리들이 생겼다. 직장과 가까운 곳에 유치원이 있어 그곳에 내일 원서 접수, 금요일에 공개추첨을 하려 한다. 그곳에 붙으면 아이 등하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병설이라 믿고 보낼 수 있어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상태다.
체감되는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임은 느끼는 주말이었다. 분명 방금 얼굴보며 보고싶었다며 인사를 나눈 것 같은데 어느새 두고가는 물건은 없냐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애도 아니고, 걱정말라며 웃으며 집을 나섰는데 고시원에 도착하고 나니 알게됐다. 마음을 두고 와버렸다.
덤벙거리는, 꼼꼼하지 못 한 성격에 색시를 챙겨주지 못 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둘째에게 자리를 내어주느라 허리 통증에 시달리는 것도 안타까웠는데 온몸이 아프고, 이도 시리다는 색시의 카톡을 보니 몸은 여기에 있지만 나는 여기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디 두 달이 어서 지나가 색시도 둘째도 건강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두고 온 마음을 찾으러 갈 수 있도록 빨리 주말이 오면 좋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고, 따뜻함으로 대하려 노력하지만 색시가 힘들어하니 그게 참 안되네요. 답답한 마음을 글로나마 풀어봅니다. 큰 일은 아니지만 작은 일도 아니기에 걱정되는 것을 어찌 할 수 없네요. 내일부터는 다시 긍정적으로 힘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