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의 방학 대장정을 마치고
드디어 첫째녀석이 어린이집에 등원을 했다.
오늘이 새학기 첫날인데
안간다고 떼쓸까봐 내심 걱정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첫째녀석을 보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봄바람이
시원한건지 서늘한건지
내 마음 같았다.
10일간의 시끌벅적함이 사라진
집안에서 느껴지는 적막감은
차분하기 보다는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졌다.
여느 때처럼 둘째녀석 밥을 먹이고
청소를 하며 첫째녀석의 흔적을 지운다.
“아아 정말, 아이들은 어쩌면 이렇게 생겨먹은 것일까.
너무 괴롭다. 너무 힘들다. 아 진짜 더 이상은 못견디 겠어
하고 항복하는 순간, 내가 딱 도망치고 싶은 그 순간,
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엄마에게 눈을 맞추며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세상에, 이런 밀고 당기기도 이런 밀고 당기기가 없다. ”
- 임경선의 ‘엄마와 연애할 때’ 중에서-
어제 책을 읽다가
이 글귀에서 상념에 젖었다.
10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첫째녀석과 같이 있을 땐 그냥 힘들다.
꺾이지 않는 넘치는 에너지가 감당이 안돼 힘들다.
내가 힘들어 하는 걸 아는지
첫째녀석이 간간이 그 힘듦을 풀어줄 때가 있다.
날 보고 이유없이 씨익(^____^) 웃어준다든가,
내가 핸드폰을 세워서 보고 있으면
사진찍는 줄 알고 포즈를 취한다든가,
자꾸 화만 내는 엄마인데도
“엄마 좋아, 마음에 들어” 이런 말을 내뱉어 주면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화남이 무장 해제된다.
“안아줘~”이러면서 와락 안길 땐
그 작은 포근함에 내가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자는 모습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만큼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기 천사다.
힘은 들지만 이런 모습들 때문에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지는 게 아닐까.
아무래도 첫째녀석은
밀당의 고수가 맞는 것 같다.
나는 육아에 힘이 들거나
첫째녀석이 말을 안들을 때마다
그 친구의 카톡 메시지를 생각하며
힘을 내보곤 한다.
작년에 4살, 2살의 어린 두 아이를 두고
하늘로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 친구의 메시지는 이러하다.
“그립다..모든 것이..”
무한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끝이 보일 때
다시 돌아보면 힘들었던 일들도
다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그때 좀 더 잘해줄 걸’
‘그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걸’
‘그때...’
그립다라는 게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그 친구의 메시지는
언제나 가슴팍을 울린다.
그래도 난 살아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보자’
‘이 시간도 돌아보면 그리워지겠지’라고
다짐하곤 한다.
첫째녀석과 같이 있을 땐
어서 방학만 끝나다오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너무도 보고 싶다.
보고 있으면 힘든데,
보이지 않으면 참 보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어린이집 하원해서 오면
“첫날 고생했다고”
많이 안아줘야겠다.
그리고 남은 시간도 힘내봐야겠다.
★ 같은 책 속의 글귀
엄마는 편하고 즐거우면 죄의식을 느껴야만
‘비양심’‘무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왜 엄마는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면 안되는가.
왜 엄마는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되나.
왜 완벽하지 않으면 안되나.
가사일을 제대로 꼼꼼히 못한다고,
남편보다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애를 남의 손에 맡긴다고,
애랑 충분히 못 놀아준다고
왜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걸까.
(중략) ‘남들은 다 제대로 하고 있는데...’
‘다들 그래’‘무조건 이래야만 해’
같은 생각에 휘둘리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다 아이가 행복해지기 전에 엄마가 불행해진다.
엄마가 불행한 것보단 불완전한 게 백배 낫다.
단, 그렇게 불완전한 엄마임에도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내 아이를 챙기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가 뭐래도 아이에겐
‘내 엄마’가 가장 완전한 엄마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기적같은 아이의 확신을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 임경선의 ‘엄마와 연애할 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