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고를 때 보통 제목을 먼저 보고
마음에 와 닿는 제목이면 바로 읽는다.
거기에 믿음이 가는 작가가 썼다면
당연히 읽는다.
이 책은 제목의 중요성을
여실히 나타내는 책이라고 생각이 된다.
‘상대방을 말로 이기는 방법’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 이라는 제목이었다면
아마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제일 닮고 싶었던 사람이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 셋만 모여도 말수가 적어지고
논리든 유머든 일단 나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래서 이 책이 더 읽고 싶어 졌는지도 모른다.
근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과
100프로의 성공을 안겨줄 것 같은 제목,
검은색 띠지가 참 마음에 들었다.
<페이지 32>
변론술은 ‘변론’이라는 딱딱한 이면에,
실은 직장에서의 프레젠테이션, 가족이나 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등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필요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어렵지 않을까?
토론을 할 일이 없는데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 속의 글처럼
사람과 만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어느 상황이든 변론술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지 36-38>
무조건 옳은 말이 이길까?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에 의한 설득은 다음 3가지로 성립된다.
1. 말하는 사람(화자)의 인품
2. 듣는 사람(청자)의 기분
3. 내용의 올바름
(중략) 실제로 누군가를 설득할 때는
항상 이 3가지의 요소가 복잡하게 섞여 있다.
이 3가지 중 어떤 요소가 특별히 강하게 나오는 경우는 있어도,
이 중에서 단 하나의 요소만으로
상대를 설득하는(예를 들어 인품만으로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은
현실에 거의 없다.
(중략) 가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의견이 맞는데 통하질 않는다.”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그에게 말하고 싶다.
“이야기하는 내용만 옳다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상대는 설득당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에는
무조건 내용만 옳으면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만 명확하다면
상대방이 당연히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내 말이 맞는 것 같은데
상대방이 내 의견을 따라주지 않으면
내심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다.
설득을 할 때 내용 외에
듣는 사람의 기분과 말하는 사람의 인품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설득의 모습과 달라서 흥미로웠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기에 감정을 배제할 수 없음에도
객관적 내용에만 치중한 채
나머지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설득의 3가지 요소인
‘말하는 사람의 인품’,
‘듣는 사람의 기분’,
‘이야기 내용의 올바름’에 대해
각 장에서 자세히 소개를 하고 있다.
3가지 요소 중 이야기 내용의 올바름부터
소개를 하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는 사람의 인품’,
‘듣는 사람의 기분’은 부속적인 것이며,
이야기의 내용이야 말로 변론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페이지 108>
감정유도는 언제나 보조수단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변론술」에서는 논리적인 이야기 방법인
설득추론이 설득방법의 핵심이며,
감정유도는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으로
실제로 풀어야 할 당면 과제의 주변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변론술」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중략) 감정 유도만으로는 토론을 바른 결론으로 유도하거나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설득할 수 없다.
설사 결론 같은 것이 나오거나, 설득이 된다고 해도
이는 일시적인 것일 뿐
긴 관점으로 봤을 때 전혀 괜찮지 않은 결론이다.
감정 유도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설득이 되지 않음을 얘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야기 내용이 올바른 것이어야
상대방이 진정으로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페이지 141>
‘좋은 사람’이 하는 말은 ‘좋은 것’실제 토론에서는 ‘누가 말하는가?’가 설득력을 크게 좌우한다.
(중략) 실제 이야기 내용과 상관없이 권위 있는 사람이나
인기 있는 사람의 의견은 ‘옳을 것 같다.’라고
생각되는 경향이 많으며,
직장에서도 상사의 기억 속에
좋게 각인된 인물의 의견이 더 잘 통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왠지 공감이 갈 듯 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은 일보다는 인간관계가
더 우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페이지 41>
토론에는 왜 늘 인신공격이 난무할까?인신공격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 녀셕은 인품(성격과 품격)이 나쁩니다.”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그러니까 여러분,
저 녀석의 의견 역시도 바르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만약 토론이 순수하게 ‘말하는 내용의 논리’만으로 승부가 결정된다면
애초에 이런 공격은 무의미하며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화제가 되는 것은
청중이 종종‘(왠지 모르게) 저 사람이 싫으니까
그가 주장하는 것에도 동의하고 싶지 않다’라고
토론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판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TV에서 토론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 상대방의 치부를 드러내며 공격한다.
그러면 공격받은 사람은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리거나
논점과 맞지 않는 말을 한다며 화를 내곤 한다.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이 시작되면서
지루한 토론에 재미의 창이 열리기도 한다.
그런 토론을 보며 ‘근데 왜 갑자기 저런 사생활 얘기를 하는 거지?
물어본 것은 그게 아닌데..’라며 이해는 안 됐지만,
치부를 들으면 확실히 그 사람의 말들에
신뢰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부분이 임팩트가 강하다 보니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그 부분만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도 막장이 더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것처럼..
토론에서 누가 말하느냐가 설득력을 좌우하기에
이미지를 하락시키는 인신공격이
토론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작가는 글을 마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득은 상대를 말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납득하에
자신의 주장으로 유도하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른 설득을 가능하게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변론술은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다.
자신과 상대의 사이에 원만한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도구’이다.
단순히 상대방이 나에게 설득 당했을 땐
내가 이겼다는 생각이 들어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진 것이란 생각에 서운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던 것 같다.
작가의 글을 보며 토론이나 설득은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닌
원만한 합의를 위한
그리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똑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말하는 이가 누군지에 따라서
설득의 정도가 180도 다르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설득에는 내용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변론술」에서 제시한
설득을 위한 기술을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 놓았다.
적절한 예시가 절묘하게 곁들여 있어
읽는데 어렵지 않았다.
이 책대로 노력을 한다면
왠지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다른 책 속의 글귀
영화<스타워즈>에 나오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들이
북적대는 술집같은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회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내 생각일 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그저 저 별에서 저런 과정을 거쳐 자란 인간들은
저렇게 생각하는 구나 하는 것을 서로 알게 될 뿐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차이에 대한 인식이
평화로운 공존과 타협의 시작일지 모른다.
-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