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개체성을 지키면서도 초유기체의 강력한 사회성을 갖도록 진화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온 모든 선택의 근본적 이유다.
가치 있는 삶
갤럽이 매일 1000명의 미국인을 상대로 연 인원 45만 명의 데이터를 얻어 분석한 바에 의하면 가난은 인생을 고달프게 만들고 부는 삶의 만족을 높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체험적 행복감'은 부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체험적 행복감은 매 순간 즉각적으로 느끼는 행복이다.
지나고 난 뒤에 평가하는 '기억적 행복'과 구별된다. 부자가 죽을 때 자신의 인생이 만족스러웠다고 평가하는 것은 기억적 행복이고 지금 고픈 배를 느끼는 것은 체험적 행복이다.
대니얼 카너먼은 DRM(Day Reconstruntion Method)이란 방법으로 체험적 행복을 측정했다. 실험 참여자들은 하루에 기억을 되살려 여러 개의 에피소드로 나눈다. 각 구간에서는 가장 주의가 집중되었던 활동을 하나 선택하여 0~6으로 채점한다. 여러 날에 걸친 이런 데이터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는지 훔쳐볼 수 있느 창구가 된다. 개럽의DRM 조사에 의하면 대도시 같이 생활비가 많이 드는 지역에서 가족의 연 수입이 7만 5000 달러 정도가 되면 체험적 행복감이 최대치에 올랐으며 추가의 수입이 기여하는 바는 미미하였다. 카너먼의 해석에 의하면, 추가의 수입은 좀 더 많은 쾌락을 구매할 수 있게 하지만 늘어난 수립이 삶의 다른 즐거움을 빼앗아간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는 것은 행복을 줄 수 있겠지만 동네 놀이동산에서 썰매를 타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행복이 돈과 비례하지 않는 것을 경제학에서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용이 승천할 때는 가파르게 오르지만 일단 하늘에 오르면 옆으로 날 수밖에 없고 비상의 짜릿함은 없어진다. 돈이 많아질수록 단위당 행복의 증가폭은 점점 작아진다.
한계효용은 증가율의 감소를 넘어 화장실 갔다 온 뒤의 배설욕같이 아예 없어져버리기도 한다. 사람은 어떤 행복에도 이내 익숙해지고 행복은 잦아든다. 여신 같은 배우와 결혼한 행우늬남자도 바람을 피우고 이혼한다.몇 번의 고배를 마신 취업 준비생은 합격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며 두통도 생리통도 다 잊어버리겠지만 출근하는 회사원에게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상기시켜봐야 짜증만 내기 쉽다. 행복의 계단에서는 아무리 올라가봐야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런 현상은 '한계효율소멸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삼천 궁녀와 아방궁은 환상적이지만 진시황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시황의 혈액 속에는 쾌락을 상쇄할 스트레스 호르몬이 밤낮없이 치솟아 있었기 십상이다. 국사란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엇갈리는 현장이니 갈등과 소음이 일상사일 것이며 비록 현대의 국회 같지는 않을지라도 보고 있는 자체로 편치 않았을 것이다. 권력이 크면 자신의 의지를 마음대로 실행할 수 있다는 만족도 있겠지만 대신 사소한 역린에도 불쾌함을 느끼기 쉽고 지속적인 유혹에 시달리며 고통을 자초하기도 쉽다. 권력과 돈이 많으면 농담도 주고받을 수 없고 조언에 분노하며 비판이나 당뇨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읻. 이것은'한계효용과부하의 법칙'이다.
부나 권력은 커다란 만족을 주는 효율적인 도구이지만 만능은 아니다.진시황도 질병과 노쇠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독일의 식물학자 슈프랭겔과 리비의 '최소양분의 법칙'은 아무리 많은 영양분이 있어도 단 한 가지 필수 양분이 모자라면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뭉에도 적용되고 마음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원리이다. 하나의 고통으로도 행복은 쉽게 깨져버린다. 치통이나 발기부전을 겪었다면 진시황의 DRM 성적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진시황의 일생에 걸친 체험적 행복 합계와 진나라 하급 관리의 체험적 행복 합계는 별로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읻. 체험적 행복을 의식하고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한계효용소멸의 법칙', '한계효용과부하의 법칙', '최소양분의 법칙'따위를 고려한다면 굳이 진시황같이 싸움을 밥먹듯이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승자가 되려고 애를 써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현자들은 진시황 같은 승자의 길이 참다운 행복으로 인도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느 고통이 없이 마음이 잔잔한 호수 같은 아타락시아가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채근담>은 "마음이 쉬면 문득 달이 뜨고 바람이 부나니 인세가 반드시 고해 아니로다."라고 한다. 경쟁에 휘말리지 않으면 많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마음먹기에 따라서 혹은 능력에 따라서는 공짜인 달과 바람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기산에 은거하던 중국의 은자 허유는 요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기겁을 하고 더 깊은 산속으로 도망치고 지방장관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자 귀를 씻어 냇물이 더럽혀졌다고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 물을 마시게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 텐데 석가모니는 그것도 부족하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경쟁은 물론 아예 육식이나 섹스 등 동물성을 포기하고 식물이 되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아무리 현자들이 탐욕을 벗어던지고 평정한 마음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가르쳐주오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 없다.로마의 현인 세네카는 부잣집에 초대받아 갔다 와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렇게 기록했다.
검약함에 철저하게 익숙한 내게 진수성찬이 보란 듯이 그 호화찬란함을 사방팔방에서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덕부네 내 눈길은 자꾸만 허공을 떠돌아야만 했습니다.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그것을 직시하고 마음을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의 마음이 올 때보다 무거워지지는 않았지만 왠지 쓸쓸한 마음에 호화찬란한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이전처럼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게 행동하지 못한 채, 어쩌면 저런 사치스러운 생활이 훨씬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내심 부끄러운 생각과 의문을 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 중에 어느 하나도 내 마음을 바꾸지는 못하였지만 그것들 모두가 내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는 것도 없었습니다.
도덕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삶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지상목표로해아 하는 사람의 본능을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며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중국인들은 대중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추구하기보다는 절충적 대안인 중용을 발전시켰다.
중국인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군자는 현실에 머물면서 중용을 추구한다.군자는 모든 일에 지나침이 없다. 사람들 틈에서 살면서 사회생활의 경쟁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예를 숭상하고 학문을 즐기며, 음식이 늘어붙지 않은 고급 프라이팬 같이 더렵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군자의 상은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요리 같은 것이다. 대차대조표가 맞지 않는다.현실에서는 먹으며 배설도 해야 하고 섹스도 없이 자식을 얻을 수 없으며 아무리 좋은 프라이팬도 조금 묻는다.
군자의 이미지는 비현실적이지만 중용의 에센스는 개인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 어느 한쪽만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두 가치는 종종 충돌을 일으키게 되어 있지만 사람은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해야 한다. 사회적인 동물에게 중용은 필수품이다. 그것은 허유나 소부 같은 무관심이나 고립일 수 없고 참여와 협동이 바탕이 된다. 무기력하거나 협동을 떠나 고립된 세포는 암세포는 아니지만 초유기체에게 필요가 없다. 참여하는 가운데 개인적 가치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경쟁과 고통을 낳지만 인내하고 적절히 소화시켜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완전히 피해 가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스의 현인 솔론은 "인간은 살아 있는 한 켤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솔론의 말은 인생에 행복이 없다기보다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무리해서 사회생활의 고통을 피하려는 노력은 생쌀만 먹는 것처럼 대체 고통을 가져올 뿐이다.
진화생물학적인 가치 있는 삶은 행복한 삶이며 행복은 욕망의 충족에서 온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서 얻어지지도 않고 개인적 추구에 몰입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의 내용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일 수도 없고 완전한 것일 수도 없다.
행복은 현싱의 생존경쟁을 헤쳐나가면서 조금씩 높아지는 개인과 사회의 적합도에 따라 느끼는 것이다. 인류의 진화 방법에 지능이 포함된 것은 아마도 때떄로 충돌하는 욕망을 동시에 추구하며 사회의 적합도와 개인적 적합도의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는 줄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 초유기체 인간,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나. 정연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