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좋은 기억만 갖고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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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어릴적에 우리 집은 꽤 가난했었다. 아빠는 그 옛날 유명했던 명문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법대 법학과를 2학년까지 마치셨으니 머리가 꽤 좋으셨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아빠는 자식들을 건사하고 집안 살림을 돌보는데에는 관심이 별로 없으셨고 세상을 살면서 더 재미를 느끼신것이 있었는데 바로 바둑이였다.

내 어릴 적 기억에 우리는 아빠를 찾기 위해 영등포 일대를 몆번이고 돌아 다녔던 것 같다. 엄마는 뽀대기로 셋째를 업고, 둘째 동생과 나의 손을 양손에 잡고 영등포 일대 아빠가 잘 가시던 기원에 아빠를 찾아 다녀야만 했다. 이상할 것도 없이바둑에 몰두하고 있는 아빠를 발견하면 엄마는 본인이 직접 들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제일 큰 아이였던 나를, 또는 나와 내 동생을 들여보내 아빠를 졸라 집에 가게 만들었다.

자식들 키우는 재미보다는 인생에 있어 더 재미있는 것이 있으셨으니 아빠는 좋은 직장도 오래 붙어있지를 못하셨다. 그럼 엄마라도 경제력이 있으면 좋았을 것을 엄마도 아빠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이나 해봤지 밖에 나가 일같은 건 하지 못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우리집은 남의 집 단칸방을 빌려 사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허드렛일을 시작하시며 우리 딸 셋을 건사하게 된 건 그리 오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어릴 때 잘 사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니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 대수러운 일도 아니건만 이상하게, 아니 쓸데없이 지금까지 기억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지금부터 어림잡아 30년도 더 된 일이다. 국민학교 3학년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학기초. 나는 단짝 친구 한명을 사귀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항상 두손을 꼭 붙잡고 붙어다녔고 즐거웠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부자와 가난하다는 것에 대해서 잘 몰랐으니 학교가 마치고 아무런 꺼리낌없이 그 친구를 데리고 우리집으로 갔다. 당시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딸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왔다고 녹색 병에 든 사이다 한병을 따서 우리에게 나눠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그 친구가 나를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며칠 후 그 친구의 생일날이 되었다. 그 친구는 생일 초대장을 만들어 반 친구들 몇명에게 돌렸다. 그런데 나에게는 초대장을 주지 않아 나는 왜 나한테는 초대장을 안 주냐 물었고 그 친구는 마지 못해 초대장 한장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친구의 생일날이 되었다. 친구의 집은 우리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산을 갂아 산 기슭쪽에 새로 지어진 곳이었기에 우리집에서 학교를 가려면 가파른 골목을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그 골목길에는 지금도 TV에서 나오는 부자들이 사는 집처럼 그런 외관을 가진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집들 끝에 크고 고급스런 대문을 가진 그 친구의 집이 있었다.

그 친구에 집에 들어서면서 일단 물고기가 사는 연못이 있는 정원에 놀랐고, 친구네 엄마가 준비해 놓은 생일생에 두번 놀라고 집의 크기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날 그 순간 나는 그 친구가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 엄마가 부뚜막이 있는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사이다를 따 주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빈부의 격차가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국민학교 3학년 10살 때 나는 빈부격차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 친구는 더 이상 나의 친구가 될 수 없었고, 그 후 친구를 사귈 때도 집안 형편이 어는 정도 엇비슷한 친구를 사귀었던 것 같다.

가끔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그럴일이 없겠지만 그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한번 물어 보고 싶었다.

너 그때 왜 그랬니?

라고 말이다. 사실 나는 나의 과거 가난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나마 돈 걱정 안하며 잘 살고 있고, 돈이 없어서 못하는 일은 없음에도 그저 구차해 지기 싫은, 동정받기도 싫은 얄팍한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스티밋에서 누군가 어두웠던 과거 얘기를 쓰면 잘 읽지 않는다. 나의 어릴적 이런 기억을 다시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빠를 보내드리고 1주기가 된 어제,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어릴 적 이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를 많이 원망한 적도 많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아빠가 많이 생각난다. 그리고 많이 보고 싶다.

3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 아니 어쩌면 평생을 또렷히 기억될 기억. 어릴 때 기억이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그것도 상처가 되어서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오늘도 우리 아이들이 좋은 기억만 간직하며 자리길, 어릴적 기억이 상처로 채워지길 않도록 오늘도 노력한다. 그리고 희망한다. 내 아이들을 포함해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상처없이 자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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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이미지>

그리고 이제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앞으로 내 아이의 친구들을 부모의 직업이나 부의 정로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 그대로를 보는 그런 부모가 되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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