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 프로젝트"
촌스러운듯 친근감 있는 이름 철가방 ,이 이름은 바로 춘천의 이름있는 지인들이 만든 구룹명입니다. 이외수씨가 총지휘하고 박범신,이남이등이 협력하여 음악을 배달 한다는 의미로써 한국적 토속풍의 구룹을 만들어 강원도를 알리고 강원도 여러 문화행사에 출연을 했습니다
구룹리더는 바로 이남이씨 였는대요 ,"울고싶어라" 고 이남이씨는 2010년 1월 29일 향년 62세의 나이에 페암으로 펜들의 곁을 떴났습니다.감기 증세로 병원을 방문 해서 불과 3개월 만에 두딸과 아내를 두고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신중현과 엽전들" 한국 가요계에 데뷔 하면서 "사랑과평화" 보컬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대 1975년 1차 대마초 사건,1980년 2차 대마초 사건에 연루 되어 구치소로 수감 되고 결국 구룹 해체라는 비운을 맞아 춘천으로 낙향을 합니다 . 그당시 조선일보에 따르면 1980년 서울 지검 검사로 고 "이남이"를 구속했던 정홍원(전국무총리) 2010년 1월 투병중이던 고 이남이의 병문안을 하고 싶다며 찾아 갔다.
정홍원 전 총리는 "이렇게 편찮으셔서 어떻게 하느냐" "그때(대마초사건)는 본의 아니게 불편 하게 해 드려 죄송 하다고 " 고 이남이는 "서울에서 춘천까지 먼 길을 나같은 사람을 보러 오셨느냐고" 답했다. 정 전총리는 5분정도 고 이남이를 만난후 병원비에 보태라며 봉투를 놓고 갔다고 합니다. 이 신문은 1980년대에 이남이가 출소 후 정 전총리를 찾아가 "그간 많은 것을 꺠달았다며"며 대마초를 피우지 않는 가수가 되겠다고 말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정홍원 전검사는 이런 시국에 "사랑과평화" 대마초 사건을 수사했다 . "울고 싶어라"는 사랑과평화가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 해체 되기 직전 고 이남이씨가 괴로운 심정을 담아 즉석에서 작곡해 마지막 무대에서 불럿던 곡입니다. 이남이는 이무렵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음악을 포기하고 용인 누님 댁 농장에서 농사를 짓기로 결심 했었습니다" 수도 없이 울기도 했고 술도 많이 마셨죠..음악에 대한 향수가 솟구 칠 때마다 "울고싶어라"를 불렀습니다(경향신문 1988년 5월17일자) 구룹 해체후 산사를 떠 돌던 이남이 씨가 지인인 이외수씨의 권고로 춘천으로 내려 갔고 지방 문화 창달을 위한 구룹을 결성하는대 바로 "철가방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그리고 후에 강원대 다니는 딸 "이단비"를 게스트 보컬로 하다가 정식 보컬로 구룹 활동을 합니다. 독특한 것은 구룹에 드럼이 없고 대신 장고와 꽹과리등 한국적 전통 악기로 연주를 했다는 것입니다
고 이남이씨는 평소에 담배 두갑을 피웠다는대 어느날 감기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페암 선고를 받고 3개월간의 투병 생활 끝에 부인과 두딸을 남기고 그만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음반 "나이만 먹었습니다" 이외수씨의 글을 가사로 그이 과거사를 회상하듯 그 음률이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온 세상 푸르던 젊은 날에는가난에 사랑도 박탈당하고
역마살로 한세상 떠돌았지요
걸음마다 그리운 이름들 떠올라서
하늘만 쳐다보면 눈시울이 젖었지요
생각하면 부질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알 수 있지요
그리운 이름들은 모두 구름걸린 언덕에서
키 큰 미루나무로 살아갑니다
바람이 불면 들리시나요
그대이름 나지막이 부르는 소리
■나이만 먹었습니다음악듣기 ■
■짬봉과 자장면 음악듣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