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여류시인 이매창

hanwoo(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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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사랑의 한을 간직하고 짧은 인생을 살다간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시인이자 기생인 이매창(李梅窓‧1573~1611)은 전남 부안의 아전인
이탕종의 딸입니다
어머니는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아마도 부안현의 관기가 아닐까 추즉 되는 대요.
서녀로서 신분의 한계를 탄식하며 많은 시를 지었지만
사실 많이 남아 있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언어적 표현력을 보면 정말 아름답고 담대하며
타고난 재능을 가히 짐작 할수 있는대요
매창이 열 살 되던 해 백운사에서 시 짓기 대회가 열려 부안의 내로라 하는
시인 묵객이 모두 모였는데 구경삼아 절에 간 매창이 실로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 시를 지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步上白雲寺(보상백운사) 걸어서 백운사에 오르니
寺在白雲間(사재백운간) 절이 흰 구름 사이에 있네
白雲僧莫掃(백운승막소) 스님이여 흰 구름을 쓸지 마소
心與白雲閑(심여백운한) 마음은 흰 구름과 함께 한가롭소.

시적 표현력을 보면 흰 구름이 아름답다 할건대
절간을 깨끗하게 빗자루질 하는 스님이 그 흰구름마저
쓸어 버릴것 같아 쓸지 말라는 시어가 참 감탄 스럽죠

취하신 님께(증취객·贈醉客)’ - 이매창(李梅窓)

醉客執羅衫 (취객집나삼)
羅衫隨手裂 (나삼수수렬)
不惜一羅衫 (불석일나삼)
但恐恩情絶 (단공은정절)

술 취하신 님 날 사정없이 끌어 당겨
끝내는 비단 저고리 찢어 놓았지요
비단 저고리 아까워 그러는 게 아니라
맺은 정 끊어질까 두려워 그러지요

매창의 여유는 여기서도 빛을 발하는 대요
취객이 몸이 달아 올라 짖궂게 굴다가 그녀의 명주저고리를
찢어 버리는 실수를 하면 그녀는 명주 저고리 하나쯤
찢어지면 대수냐 님이 주신 정이 끊어지지 않는게 다행이다
하면서 여유가 속마음과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IMG_6828매창공원.jpg

허균이 부안에 왔을때 이매창을 만나 정신적인 사랑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후에 허균의 문학적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또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 시를 읽어주어 매창의 시 두서너편은
허난설헌의 영향도 받았던듯 합니다

매창이 끝까지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사람은 바로 유희창이죠
유희창은 천민 출신으로 시에 능하고 예법에 뛰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합니다
그런대 매창이 28살이나 연상인 유희경을 사랑하는 대는
아마도 신분이 같은 처지였고 공통언어인 시라는 것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희창은 서경덕의 문인인 박순으로부터 당시를 배웠고
중인신분의 모임인 "풍월향도"를 주도 했습니다

IMG_6831매창공원.jpg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내 정령(精靈) 술에 섞여 님의 속에 흘러들어
구곡간장(九曲肝腸)을 마디마디 찾아가며
날 잊고 님 향한 마음을 다스리려 하노라

기러기 산 채로 잡아 정들이고 길들여서
님의 집 가는 길을 역력(歷歷)히 가르쳐주고
한밤중 님 생각날 제면 소식 전케 하리라

유희경과의 이별을 한 시조에서 보면 애뜻한 사랑의 정을
너무나 애절 하게 표현 했습니다
유희경 역시 한양으로 올라가 그녀를 그리워하며 시를 남겼는대

사랑하는 님의집은 낭주에있고
내집은 한양에있어
그리움 사무처도 서로 볼수가 없으니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도 애가 끊어지누나

그후 15년이 지난뒤 잠시 만났지만 짧은 재회의 시간이었고
함께 시를 논하고는 유희경은 한양으로 올라갑니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만남이 됩니다
다음해에 매창은 38살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떠날때 유언으로
그녀의 시와 거문고를 같이 묻어 달라는 말을 남겼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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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에가면 매창공원이 있는대요
매창 공원에는 그녀를 기리는 시비며 그당시 문인들이 남긴
시들이 적혀 있답니다..

■ 동우-아플까 듣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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