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아싸(아웃싸이더의 줄임말, 대학 등에서 혼자 다니는 사람을 말함)의 이미지에 관해서 이야기 해보라고 하면 무슨 대답이 나올까?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오겠다. 그런데도 그 이미지들의 공통점을 하나 뽑아보자면 아싸는 외롭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 당신의 생각이나, 미디어가 생산하는 아싸들의 이미지는 외롭다. 혼자 다녀서 서글프고, 밥은 화장실에서 오이 뺀 김밥을 먹는 게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저 이미지가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아싸라고 하면 쓸쓸해 보이는 감정들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아싸는 진짜 불쌍한 사람인가? 나는 일단 그렇다고 하겠다. 하지만 또한 아니라고도 하겠다. 순전히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아싸의 반대말인 인싸라고 해서 꼭 행복한 법이 없듯이, 아싸도 반드시 불쌍하지는 않다. 사회에는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재단하듯이 하나로 정리할 수 없다. 아싸도 마찬가지다. 정말 미디어나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아싸도 있다. 하지만 그걸로 아싸의 정체성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오랜 세월 동안, 그리고 지금 또한, 공동체를 상당히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혼자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 일종의 별종으로 취급된다. 별종이라고 해서 전혀 피해를 주거나, 나쁘다는 보장이 없다. 심지어 아싸는 확정적으로 그렇다. 그런데 ‘다른 건 틀리다’라는 이상한 생각 때문에, 그들에게 불쌍하다는 낙인을 찍고 이리저리 분석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아싸들의 의사는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 단순히 이 수준에서 그치면 모르겠으나,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굳어지고,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냐는 최면에 걸리게 만든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하는 아싸들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없다. 그저 그들 상상 속의 아싸를 그려놓고, 그런 아싸들만 찾아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게 전부다. 아니면 하나의 사회적 유행으로 보아 단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공동체의 회복을 바라고,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다지 관심 없는 것이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 아싸를 그리고, 그러려니 하는 게,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
또한, 아싸는 어떤 이유가 되서든지, 공동생활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잠깐이든, 영구든, 그 자리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들에게 공동체로 복귀하라고 하면서 불쌍한 이미지를 강제로 부여하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다.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거나, 원치 않는데 억지로 공동체에 편입 하려다 더 큰 피해를 보게 만들 수도 있다. 당신이 진정으로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들을 보듬어주고 싶다면, 그런 선입견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지금은 민주 사회다. 강요와 이미지 부여로, 사람을 강제적으로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건 야만적인 일이다. 자, 이제 색안경은 벗어 던져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아싸를 보자. 그들은 불쌍하지만, 불쌍하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