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에 미사 갔을 때, 신부님의 강론 시작은 이랬습니다. "아쉽습니다. 크로아티아가 졌습니다."
물론 월드컵 결승에 올라간 나라들 중 응원하는 나라가 다 다른 것이 당연하지요. 우리야 애초에 우리 자신을 응원했고, 그 응원이 독일전 승리라는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도 신부님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약자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더불어 프랑스 같은 축구 선진국들이 이 경기에서 이길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물론 프랑스를 응원했던 이들에겐 안 먹힐 이야기지만, 저에겐 깊이 와 닿더군요.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갔습니다. 이제 다시 일을 정상적으로 시작하려면 몸을 만들어 놓아야지요. 그런데 뜻밖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거의 20년 전 가족이 모두 난민으로 소말리아에서 미국으로 온 하산. 저는 그를 우리집에서 운영하던 가게의 손님으로 만났었습니다. 그 집 가족들은 할아버지부터 손주 하산까지 모두 우리 식구들과 알게 됐습니다. 시애틀의 관문인 시택 공항은 시애틀과 워싱턴 주의 주요 항만도시이며 한인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는 타코마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시애틀과 타코마의 철자 첫 세 개 씩을 따서 Sea-Tac 으로 불리웠습니다. 그리고 그 공항 근처가 독립시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요.
그리고 그 독립시는 소말리아, 펀잡, 구 유고 연방의 일부였던 보스니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온 난민들의 첫 정착지가 됐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우리 가족들은 그들을 고객으로 상대하게 됐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잡화점에서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그들 공동체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들의 역사나, 이들의 언어도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그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였습니다. 하산네 식구들을 알게 되고 나서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됐었습니다. 원래 이상하게 언어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아랍어를 조금 알고 있었고,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이 모두 인사는 아랍어로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습니다.
조금씩 그들과 친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제 안에 있었던 이슬람에 대한 편견들을 깨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알라'가 기독교의 '하느님'과 같은 의미이며, 똑같은 하느님을 말하는 다른 언어일 뿐이란 걸 알았고, 예수에 대한 관점만이 다를 뿐 이들이 말하는 이브라힘이 아브라함이며, 아담과 이브를 아담과 하와라고 말하는 것이 다르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모두 '평화를 말하는 종교'임을 알았고, "평화가 그대에게!"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의 인사임을 알았습니다. "앗쌀람 아레에꿈", 즉 그것은 우리가 미사에서 서로에게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소말리아 사람들이 해적이 된 이유도 저는 그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해적이 되기를 선택한 소말리아 사람들은 원래 어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황금의 어장으로 불리웠던 이 바다에 소말리아가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특히 서유럽 국가들이 소말리아 앞바다에 핵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산업폐기물들을 투기하고 이것이 수자원을 말려 버리면서 이들은 처음에 자경대 형식으로 바다를 감시하다가 결국 해적질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들은 일부였으나 권력 공백 상태의 소말리아에서 군벌들이 이들을 징집해 그들의 사병으로 만들었고, 적지 않은 이들은 이를 피해 난민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예멘 난민들도 이와 비슷한 경우일 겁니다.
그들에게 덧씌워진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는 참 억울한 거였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나라를 탈출해 나온 것도 결국 그 테러의 공포를 피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아무튼, 당시에 어렸던 하산은 이제 성숙한 이 사회의 일원이 됐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 결국 의사가 됐습니다. 물론 그의 손님들은 대부분 소말리아 커뮤니티의 손님들이지만, 이곳의 한인 의사들도 대부분 손님은 한인인 것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거지요.
만일 하산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지금 그가 미국 사회에서 의사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런 기회를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게 인권의 기본 아닐까요? 하산의 할아버지는 아직도 생존해 계시고, 아직도 소말리아로 돌아갈 수 있기를 꿈꾼다고 합니다. 마음이 짠했습니다.
얼마전 저는 충격적인 이야길 하나 들었습니다.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신부가 한국에 오려면 일정 정도의 한국말을 해야 하고, 그걸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만일 미국이 그랬다면 아마 수많은 이민자들은 자기 가족들과 결합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나라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나라의 말을 해야 하겠지만, 그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권리 자체를 위해 그 나라의 말을 해야 하도록 제도로 규정한다? 얼마나 닫힌 사고입니까.
인종에 대한 편견, 종교에 대한 편견은 열린 사회에서는 죄악시되는 게 당연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지금 열린 사회라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꽉 닫혀 있습니다. 물론 여기엔 지금 우리 청년들이 당면하고 있는 실업문제라던지, 기회의 불균등 문제가 엮여 있습니다. 해결책이 거기에 있다면 촛점도 거기에 맞춰야 하는 겁니다.
최저임금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마치 작은 점포주들과 아르바이트생들과의 갈등이 빚어지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 근본은 프랜차이즈 점주들을 뜯어가는 대기업들의 지나친 갑질과 점포가 들어서 있는 건물주들의 탐욕이 더 근본적인 문제 아니던가요?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와 대기업들의 이익에 대한 적정한 과세, 그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적극적인 과세가 오히려 문제를 더 빨리 풀 수 있는 해결책 아니었습니까? 왜 곁가지들을 갖고 이렇게 크게 키우려고 하는가를 보면, 결국 그 문제를 키워서 이익을 보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한국 사회의 구조를 이대로 가지고 가야만 하는 세력들, 이 갈등을 계속해 조장해야 하는 세력들. 이들이 자꾸만 문제를 키우고 갈등을 키우고 우리가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이 현실을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만들어 낸 촛불혁명의 정신에 부합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그 핵심을 제대로 지켜보고 들여다본다면, 지금의 이 이상한 갈등에 이리 휩싸이진 않을 거란 아쉬움이 문득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