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계획으로는 다른 사진과 에세이를 올리려했지만
노란 리본의 기억이 선명한 날이라 급히 다른 사진을 찾았다.
바로 그 배의 사진이다.
4년 전 그날.
그 사고 소식이 들리던 날.
나는 지하 스튜디오의 막내 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오전에는 일이 없었던 스튜디오의 특성상 선배들과 함께 뉴스를 보고 있었고
생중계로 사고난 배의 소식을 접했었다.
'전원 구조'라는 타이틀 자막이 나가고
배가 아깝긴 하지만 죽은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짐을 이내 깨달았고
그 지하스튜디오의 사람들은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년 후 나는 광화문의 한 언론사로 이직을 했고
매일 출퇴근하며 광화문광장의 천막을 지나쳤다.
안타까웠고 슬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노란 리본을 묶고 애도를 표하기만 할 뿐...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다.
정권이 바뀌고
그간 못끌어올렸던 배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양됐다.
회사를 떠나 고향인 목포로 내려온 이후였다.
배는 목포 신항만으로 인양되었고 줄지어 행렬이 이어졌다.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인파는 점차 줄어들었고
어느새 사고 이후 4년이 지났다.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한정적이기만 하다.
가방에 노란 리본 뱃지를 달고 다닐 뿐.
그와중에 어제 신항을 찾았던 동생과의 대화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어떤 정치인이 신항에 와 있었노라고.
유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려 실랑이를 벌였다고.
사람들의 시선과 야유에도 아랑곳하지 않더라고.
내 생각에 아마 그는 세월호를 정치적 선전에 이용하려고 했으리라.
여러 사람들의 마음 속에 아직도 아프고 슬픈 일인데
그것을 빌미삼아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 때문에 씁쓸해졌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더욱 씁쓸해졌다.
나는 어떤 노력을 했는가.
앞으로 그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목포 신항만 세월호 인양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