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아이의 모습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자라 본연의 아이의 모습은 가슴 속에 감추고 살아간다. 이 아이의 모습은 그러한 사회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감춰진 것이기도, 그 사회에 맞춰가기 위해 자의로 감춰진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세상의 종말이란 자신이 눈감는 날이며, 세상은 모두 자신을 위해 생겨나고 돌아간다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가장 높고, 자신의 감정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 어느 때보다 가장 솔직한 모습을 가진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애들은 거짓말을 못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자신이 보는 그대로의 것을 얘기한다. 물론 아이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좀 더 과장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거짓은 아니다.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이 믿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거니까. 아무튼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지금의 그 행동에 온 신경과 정신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일이 틀리게 되거나 그러한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이 제어를 받으면 세상이 무너지듯 펑펑 운다. 이것은 아이이기 때문에 당연하고, 그러한 모습 때문에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아이의 모습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간의 천성, 원래의 모습과 티 없이 순수한 모습이 바로 이 어린 아이 때의 모습이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히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원래의 얼굴에서 조금씩, 조금씩 성숙해지며 자라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성격이 변해가는 모습은 다르다. 그 변화는 자의를 가장한 타의로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러나 아주 큰 폭으로. 아이는 점점 어른으로, 원래 가졌던 솔직함과 감정들을 제어하기를 강요당하며, 남의 의견을 제 의견보다 더욱 존중하는, 남의 눈치를 살피며 웃는 얼굴을 해야만 하는 어른이 되어간다.
지금의 사람들은 그런 아이들이 답답하기도, 그러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 생각하기도 한다. 자신의 것을 빼앗기려 하지 않는 모습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그 모습이,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들이. 그것은 이 글을 쓰는 나도 마찬가지다. 빼앗기는 게 익숙해 온전한 내 것 하나 없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그저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야하는 내 모습이 어린아이들을 보다보면 자괴감이 들도록 안타까워진다. 한 번쯤은 그게 아니라고, 돌려달라고 악을 쓰며 펑펑 울고 싶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한숨 쉬는 이들의 세상 속에서 나는 살아가야 한다. 어른이 되어, 아이의 모습을 마음 속에 숨긴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