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앞서, 이 글은 개인적인 견해가 200퍼센트 반영된 글이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 자신의 의견과 부합하지 않는 발언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리며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에 대해 나름 여러 가지로 생각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소설을 제일 좋아하는데요.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함축적으로 써야하고, 독자에게 그 시의 의도나 해석을 쉽게 들켜버리면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시와 달리 최대한 독자에게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의 교훈을 전할 수 있는 소설이 제게는 더욱 끌렸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소설은 또 하나의 의사소통 수단이었고, 소신껏 제 발언을 할 수 있는 통로였으며, 무엇보다 제가 꿈꾸는 곳을 소설로나마 펼쳐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소설은 제게 의미 깊은 것이었고, 글자로 이루어진 예술이었습니다
저는 소설을 쓰기 전, 소설의 플롯을 짤 때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이 소설을 통해서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소설을 읽어도,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말을 전하려 하는가에 대해 집중하여 보게 되고, 설령 그런 의도가 전혀 없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제 나름대로 그 작품 안에서 전해들을 만한 말을 찾아내며 읽는 편이었습니다. 혹자는 이야기합니다. 소설은 너무 일방적인 것 같다고. 소설을 읽는데 작가가 내게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내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고. 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소설이 독자에게 전하는 말은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중심 주제가 될 그 하나에 초점을 맞춰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그 사람이 내게 원하는 말이 많아, 그것을 내게 한꺼번에 쏟아내면 그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이듯이 소설도 마찬가지이지요. 소설은 그런 식으로 떼를 써선 안 된다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떼쓴다고 소설 쓰면 차라리 블로그에서 혼자 주저리주저리 올리는 편이 훨씬 낫지요.
저도 인정하는 것은 소설은 일방적이라는 것입니다. 주로 책이나 e-book의 형태로 독자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독자와 작가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고, 독자가 읽으며 무슨 생각을 하던 그것을 인터넷에 올리고 그것을 작가가 읽지 않으면 작가는 독자의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일방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소설은 일방적일 수도 쌍방적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소설은 책이나 e-book의 형태 말고도 인터넷에 인터넷소설의 형태로, 조아라나 카카오 페이지와 같은 어플리케이션에 올려져 독자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독자와 작가가 소통할 수 있도록 덧글을 달 수 있게 덧글 창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독자는 작품을 읽은 후의 감상을 올리기도 하고, 다음 편에 나올 내용을 미리 유추해 보기도 하고, 작가에게 원하는 말을 덧글로나마 올리기도 합니다. 그럼 작가는 이것을 보고 독자가 원하는 대로, 독자가 피드백 해주는 대로 그 다음 편에 반영을 해 작품을 끌어갈 수 있습니다. 부족한 방법이나마 독자와 작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또한, 독자가 어떤 작가의 책을 읽으며 작가가 써내는 말 하나하나에 말을 걸며 대화하듯 소설을 읽는 방법에서도 소설의 쌍방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인공을 보며 우리는 마치 그 작품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생각에 주인공이 고민을 하면 함께 고민을 하고, 우울해 하면 함께 우울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묻습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그럼 작가는 그 다음 장면들을 제시하면서 그것에 대한 작가의 답을 독자에게 전합니다. 독자는 그럼 작가에게 마치 대답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게 되죠. 그리고 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을 써내려가며 주인공에게 시련을 안겨줄 때마다 작가는 이것을 읽는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떤 대답을 원할 지에 대해 속으로 묻고 또 물으며 글을 씁니다. 이것은 독자와 작가의 간접적인 소통을 소설이 매개체가 되어 가능케 하는 것이지요.
이렇듯 작가와 독자를 연결시켜주는 소설은 그 특성으로 인해 지켜야 할 규범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것들은 그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은 아니지만 작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소설 속에서 지켜져야 할 규범 중 대표적인 것은, 소설에서도 윤리가 존재하며 이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근 살인, 자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어떤 소설을 보던 간에 주인공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사건을 시작하기 위해 사람이 한 명씩 먼저 죽으며 시작하는 장면은 꼭 나오고, 이러한 소설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마치 가을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무차별적으로 아무런 의미조차 지니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죽어나갑니다. 그러한 현상을 보다보면 사람의 생명에 대한 경시가 바로 그것에서 드러나며, 생명에 대한 가치와 존엄성이 소설 속에서는 이미 떨어질 만큼 떨어져 더 이상 생명에 대한 소중함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소설 속 인물도 생명입니다. 소설 속 세계는 현실 세계의 반영이며, 현실 세계의 축소판입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은 엄연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하나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고, 그의 생명은 그 어떤 것들보다 귀중하고 그 중요도가 무겁습니다. 그런데 사건 하나 시작해야 한다고 휙 죽이고, 어차피 여기는 안 중요한 부분이지만 공포감 또는 긴장감을 조성해야 하니 후두둑 죽이고.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소설은 작품에 따라 독자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소설이 기본적인 윤리의식조차 지키고 있지 않다면, 그런데 그런 작품을 아직 윤리의식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본다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한 후폭풍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이 나라는 안 그래도 사람을 지나가는 방해물쯤으로 보고 아무렇지 않게 쏴 죽이는 FPS게임이 어린 아이들에게 오픈 되어 있고, 드라마 속에서도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으며, 사람의 생명을 경시한 사례 중 가장 최악의 사례읜 각종 묻지마 범죄가 판을 치는 나라입니다. 그런 그릇된 흐름에 소설은 그것에 숟가락을 얹는 것이 아닌 잘못된 의식을 깨워주는 빛으로써 존재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아직 이야기 하지 못한 것들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 전한 것 같네요! 그런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