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에는 노와 노노만 있을 뿐이다.
한번 부정하고 그것을 부정해서 진리에 바로 접근할 수 있다.
진리는 마이너스이고, 합리적 부정이다.
부정을 통해서 진리에 합리적 의사결정에 성큼 다가갈 수 있다.
노라고 말했을 때 뇌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고, 상대와 상황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밑바닥까지 볼 수 있다.
살아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자세이다.
예스맨은 속임당하기 쉬운 바보들이다.
물론 나도 바보지만.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다.
공자의 언명처럼 애초에 얘기를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얘기는 들어 주되 행동을 위한 결정을 위해서는 노를 해야 한다. 노와 노노를 통해 까칠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것이 깨달은 사람이다. 그것이 속인 사이에서도 몸을 더럽히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인으로 어울리되 노와 노노를 통해 진실과 진리에 접근해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노와 노노의 방법이라도 근본적인 인을 부정할 수 없다. 인이 없으면 받아들일 수 없고, 사귈 수 없고, 상호작용할 수 없어 일을 도모할 수 없다.
인으로 받아들이되 노와 노노로 검정을 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알아가야 하고, 험한 지경에서도 같이 할 수 있는 지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일을 도모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이런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과연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가의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 받아들이는 것도 옳지 않고 일단 들어 주고, 바로 노라 할 건 노라하고,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유보하고, 그래도 급하게 요구하면 노라 얘기하고 괜찮은 것도 일단은 노라 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