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야자도 모르던 예전시절... LG트윈스의 엄청난 팬인 친구의 손에 이끌려 야구장에 처음 갔었다. 그 당시 나에게 야구장은 생소한 곳이었다. 생각보다 넓은 잠실야구장, 이를 메운 수많은 팬들과 그 중심에 있는 응원단, 그리고 크게 울려퍼지는 응원가들! 하지만 야알못이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사람들이 환호하면 같이 환호하고 실망하면 같이 실망하는 게 전부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야구는 단지 여가의 하나일 뿐 LG트윈스의 팬이 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002년 한창 월드컵 열풍이 들이닥치던 그때, 나는 또 하나의 열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그 당시 4위에 겨우 안착했던 LG트윈스가 결승전인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작년에 논란이 된 김성근 감독과 ‘야생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이상훈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당시 이상훈은 시원시원한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는 소위 ‘지옥에서도 데리고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였다. 항상 등판할 때 마운드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과 찰랑거리는(?) 긴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LG트윈스 광팬이었던 친구와 함께 7전 4선승제인 한국시리즈를 함께 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던 중이었다. 5차전에 간신히 승리를 거두고 2:3으로 승부의 균형추를 맞춘 상황에서 친구는 6차전을 직접 보자고 제의하게 된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우리는 대구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암표를 겨우 구해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6차전은 치열한 타격전으로 진행되었다. 홈런과 안타가 빗발쳤고 9회말 9:6으로 앞선 가운데 마무리투수로 이상훈이 나왔다. 언제나처럼 긴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를 향해 전력으로 뛰어오는 그를 보면서 승리를 확신했었다. 아마 그 당시 LG팬들도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만약 이 경기를 잡아서 3:3으로 최종전까지 가면 아무도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면서 2명의 주자가 나가게 된다. 다음타석은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했던 이승엽이었다. 뛰어난 국민타자였지만 이번 한국시리즈에선 부진했고 3점차라 안도감이 들었던 그 순간 이승엽이 3점홈런을 때렸다! 9:9 동점...그리고 강판당하는 이상훈. 다음 타석에 올라온 마해영이 다시 백투백홈런을 때림으로써 스코어 9:10으로 LG트윈스는 한국시리즈 우승이 좌절되고 만다.
그 현장을 직접 목격한 우리는 허탈감과 좌절감에 근처 포장마차로 향했다. 환호하는 삼성홈팬들 사이에서 미친듯이 술을 마셨고 이상훈을 욕했었다. 그 당시에는! 그러나 이상훈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지면서 나는 LG트윈스의 팬이 되기로 한다.
나갈 수 있겠냐고 묻지 마시고 나가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언제고 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당시 3경기 연속 등판으로 지쳐있었을 때 팀이 위기에 처하자 자진해서 불펜으로 향하며 코치진에게 남긴 말이다. 이미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팀을 위해서 희생하였던 거다.
나는 그때부터 LG트윈스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2018년 현재, 나는 아직도 LG트윈스의 16년차팬이다.
P.S : 1994년 마지막 우승을 할 때 구단주가 일본술을 담가 다음 우승할 때 마시자고 했었다. 우승 시 MVP에 건네줄 8천만원 짜리 롤렉스 시계와 함께...그 술은 지금쯤 식초가 되어있을까...롤렉스시계는 골동품이 되었을까... 알아보고싶다.
(문제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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