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의 가치와 준비된 관용

garden.park(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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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짓말을 많이 했다. 거짓말을 한 횟수와 '온전히 내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 한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자기 위로의 수는 거의 일치한다. 그 것으로 위안이 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금방 내가 했던 행위 자체가 기억에서 지워진다. 자책감을 적게 하는 일종의 자기 암시일까? 아니면 지금 그냥 지어내는 말장난들 일 뿐, 내가 도덕 원칙이 이끄는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라서 일 수도 있다.

#2
아무도 나를 비난하거나 처벌하지는 않았다. 아니,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 아니면 '거짓말을 나라는 사람의 개성으로 그냥 바라봐 준 사람들' 이렇게 두 부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와중에 정말조차 거짓말로 바라보는 사람이 생겼고 거짓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았다. 내가 후자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속죄는 그들에게 진실된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3
흔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에게 피해가 간 것도 없는데 내가 거짓말을 했든 안 했든 니가 무슨 상관이냐", "너에게 이익이 갔는데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래도 상대방이 거짓말이라는 행위때문에 계속 화를 낸다면 미친놈 취급을 당한다. 이다지도 정직의 가치는 높이 매겨져 있지 않다. 정직의 가치가 바닥이니까 이익이 되거나 피해가 가지 않는 거짓말은 잘못된 일조차 아닌 것이다.

#4
추상과 실재의 세계는 이제 거의 확실히 분리 되었다. 피노키오나 양치기 소년을 보며 사람들은 정언 명령으로서의 '거짓말하지 말라'를 떠올리지만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아니면 인터넷 스타가 한 거짓말에는 거짓말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조건은 거짓말의 당사자가 지어내기도 하고 팬들이 만들어 주기도 한다.

#5
인기를 얻고 개인의 영향력이 증대된다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는 '거짓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하는 위치가 되었음'이 아니다.

거짓의 정당화, 심해지면 거짓의 비거짓화는 그들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타인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 것을 겪어본 이들은 그 후로 이 현상을 이용하기도 한다.

거짓말은 과장의 일종으로 축소되고, 유명인은 거짓말과 참 말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일이 심각해졌을 때는 진실 '되 보이는' 변명을 하면, 팬들은 준비된 관용의 자세를 보이며 누군가를 용서하는 본인의 선함에 만족한다.

#6

거짓이 거짓이 아니게 된 자는 두려울 것이 없어지고 모든 것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나는 이 모든 현상이 믿기지 않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나는 거짓말쟁이이며, 내 거짓말이 거짓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내가 실제로 나아가는 방향이 일치하기를 소망하고 기원한다.

피노키오.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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