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Que Pena Contigo! -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진짜 이유 (Feat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아직도 수요일밖에 안됐다니.. 적어도 내일이 금요일 같은데
요새 직장에 일이 많았다. 3일이 일주일 같았다.
그리고 나의 감정은 기복이라는 이름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오르내리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처럼 쭉쭉 떨어져 버렸다. 위험한 수준까지 도달해버렸다. 결국 명상도 소용없는 것일까.
그때 구세주처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은 아무것도 안 들리던 내 마음의 빗장을 열고 살포시 내려앉았다. 법륜스님 즉문즉설 - 675회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위축되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처음 들을 때는 무심하고 쉽게 말하는 스님의 화법이 원망스러웠는데 요새는 그 말씀만큼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말도 없다. 스님의 개그코드도 목소리도 그 안의 담긴 지혜도 마냥 좋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이내 마음이 괜찮아진다.
형이상적이고 모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이 혼자 뱅뱅도는 쓸데없는 많은 생각들은 그야말로 '개소리'(나만의 망상=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짝=자기방어적 포장)라는 걸 깨달았다. 평소의 ' 원래 그래'라는 자기합리화, 자기방어, 열등감에 벗어나서 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생각해보자.
왜 나는 직장에서 (그토록 죽을 것 마냥)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일까?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꽃을 수입하려면 통관은 필수고, 원본 검역증이 필요하다. 다른 서류는 사본도 무방하지만 검역증만큼은 예외가 없다. 내가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콜롬비아 보고타 선적에 검역증 원본이 사라졌다. 순간 앞으로 겪을 고통에 대한 '사서 걱정'이 모드가 발동했다.
해결방법은 명료했다. 콜롬비아 측이 원본 서류를 찾아 보내거나 새로운 검역증을 재발급(이전 검역증을 대체한다는 문구)하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한국으로 원본을 보내주면 해결될 일이다.
밤 11시, 담당자는 답이 없고 함께 일하는 상급자(추정) L이 대답한다. 상황을 설명하고 검역증을 재발행해서 최대한 빨리 특송으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걱정 말고 쉬어라, 내일 피드백해주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7시,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했다. 답장도 메일도 없다. 불안한 마음에 문자를 보냈다. 딴 소리를 한다. 항공사 측에서 선적 이미 뺏다고 하던데 사실이냐고. 횡단보도를 건너며 분노가 치밀었다. 안 되는 스페인어를 번역기 돌려가며 꾹꾹 눌러썼다.
'통관을 못하면 물건을 못 뺀다고 검역증 없이 통관을 못한다고!! 아무것도 안 한 거야? 어떻게 내 말을 그렇게 무시할 수가 있어?!! 내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대문자로 답장이 왔다.
'나는 네 말을 무시한 적 없고 이미 재발행 조치(?)를 취했고 이렇게 너에게 응대해주고 있다.'
'그래서 대체 언제 우리한테 그 서류 보내줄 수 있는 건데? 언제 한국에 도착해? 그리고 어떻게 보내줄 건데? 넌 한 번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해준 적이 없다.'
'내일 준비돼! 내일 준비해서 Fedex나 DHL로 발송해줄게'
알겠다며 일단락한 후에도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음악도 커피도 소용없었다. 화는 오후를 기점으로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변질되었다.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고 있었고 불안함이 날 사로잡았다. 고통스러웠다.
화요일 밤, 요목조목 내가 할 말만 적어 긴 메시지를 보냈다. 이게 내 최선이다. 읽씹 당했지만 그냥 잔다. 나도 살아야지.
수요일 아침 6시, 다행히 메일로 검역증 사본이 왔다. 대체한다는 문구가 빠진 것 같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는데(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 자세히 찾아보니 있었다. 다행이다. 그런데 검역증 원본은 내일 발송해준단다.. 대체 왜?
어제 상사는 내게 '목요일까지만 도착하면 돼!'라고 말했었지...
이해가 안 돼 화가 났지만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부여잡고 친절모드로 물었다.
'검역증은 잘 받았는데 오늘 발송 못한 이유가 있어? 내일 보내주면 한국에 언제 도착해? 우리가 연휴라서 금요일까지 못 받으면 서류를 다음 주 목요일이나 받을 수 있어서 너무 걱정돼서 그래.'
'검역증을 받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걸렸어. 발송은 확실히 내일 아침에 할 거고 바로 track number도 보내줄게.'
'정말 미안한데 한국에 도착하는 시간이 언제일지만이라도 오늘 알아봐 줄 수 없을까?' (반쯤 포기상태+비굴)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 답은 없었다.
'소식 없어?'
''Que Pena Contigo! 내일 발송하고 그들이 정보를 알려주면 바로 보내줄게. 지금은 알 수가 없어. (나의 해석: 내일 되야 알 수 있다니깐 그만 좀 물어봐라 좀)
Que=감탄사
Pena=고통, 슬픔
Contigo=너와 함께, 너를, 너에게
응??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말인가? 닦달하지 말라는 건가?...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7시 30분 팩트만 적어 상사님께 보고했고 비로소 그 일은 내 손을 떠나 다른 이에게 넘겨졌다.
선적의 사이클은 일주일, 시간이 지나면 큰 문제로 보이는 것들조차 어차피 사라지고 다른 문제(?)들로 덮어진다. 후에 기억같은 건 남지 않는다. 이 것 또한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난 왜 일일이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고 상처 입는가?
설사 검역증이 안 오거나 늦게 와서 추석이 끝날 때까지 저 선적을 뺄 수 없다 치자, 내가 직접적으로 손해 보는 건 없다. 이 회사는 내 회사도 아니고 내가 손실을 떠안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상사가 내게 잔소리를 하거나 나의 무능함에 대해 질타받을 수 있다.
그건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책잡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차피 여기서 승진이나 연봉 인상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물론 성과급도 제로다. 설사 내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도 그런 건 어차피 없다. 이 일을 빌미로 나를 협박할 수도 나를 자르지도 않을 것이다. (잘라도 어쩔 수 없고)
만약 내게 기분 나쁜 말을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귀찮은 일에 휘말렸기 때문에 당연한 거고 화를 내는 건 내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꼬인 일에 화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날 미워하거나 원망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고 나는 그것을 침해할 권리가 없다.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 생각대로 가치가 낮거나 무능력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그냥 나는 해결될 때까지 계속 내가 콜롬비아 측에 무언가를 요구해야 하는 직무 자체가 스트레스다. 한국/네덜란드/호주 업체라면 그렇게 처리할 수 없는 일들을 저렇게 처리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그들의 행태가 이해가 도무지 가질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저렇게 잔소리를 하는 것 말고는 없다. 차라리 내가 일하고 싶다. 내가 처리하고 싶다. 답답해 죽을 것 같다. 할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뭘 요구하는 일은 곤혹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내 욕심이다. 나는 저들의 고용주도 아니고 저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처리해줄 의무가 없다. 아마 그들 문화에는 그들의 상식과 속도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선적을 그렇게 우려할 필요도 없다.
문득 중남미 여행을 생각해본다. 얼마나 내가 아는 상식에 벗어나는 일이 많았던가.
버스는 하루를 늦게 와도 아무도 불만을 안 하고 일하기 싫으면 그냥 일을 안 갔다. 맞다. 그랬지.. 그런데 이틀 만에 검역증도 발급을 해줬다. 엄청 빠른 걸지도 모른다.
사고가 터진 게 저들의 잘못도 아니고 그냥 불운했던 것뿐인데 더럽게 처리할 일은 많다. 앵무새처럼 빨리빨리를 외쳐대는 여자애가 자기를 닦달한다. 그것 또한 괴로운 일이다. 물론 그 여자도 그냥 소임을 다했던 것이다. 일을 처리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서로 그냥 해줄 수 있는 최선을 하면 되고 내 맘대로 안된다고 화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세상이 무너질 만큼 큰일이란 없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소한 일들에 대한 이 강한 책임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내가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버림받을까 두려운 감정이다. 나의 존재 이유/의미에 의심을 가하지 않기 위한 자기 발악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설득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사회에 효용이 있다는 걸 증명해! 내 몫의 소임을 다해! 그리고 그게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이면 좋겠어! 그래야 불안하지 않으니깐. 그래야 살아도 괜찮을 것 같으니깐!'
그렇다. 그것은 지독한 자기비하이다. 그냥 내 자체로 나를 인정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거다.
끊임없이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거다.
내가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내가 잘하는 일도 있는 반면 못하는 일도 있다. 난 남들의 협조를 구하는 일에 소질이 없고 관리자 능력도 영 꽝이다. 게다가 스페인어도 잘 못한다. 그건 내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스트레스받을 일은 아니다. 계기로 삼아 실력을 늘리도록 더 공부를 하거나 연습을 하면 될 뿐 그냥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인정하면 아무런 일도 아니다.
정말이다. 내 마음만 문제다. 외부에도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나의 문제는 아니다. 그건 그들의 문제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다. 내가 고통스럽게 받아들였고 끊임없이 강요를 했기에 나는 괴로웠다.
너무 인정받으려고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 나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도 말자. 오히려 남이 나를 과소평가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일을 대충하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냥 일이 생기면 일을 열심히 하고 결과는 그저 받아들이자. 그게 다 해결이 안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도 괜찮다. 또 해결이 안되면 어떠하리~ 내 능력밖의 일인걸. 시간은 어떻게든 지나간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단순한 나의 롤러코스터 기복의 카톡으로 마무리한다
집에 올 땐 행복함이 가득했다고 한다. 과연 이 수련들로 나는 좀 평온해질 수 있을까?
P.S. 알고 나면 나쁜 사람도 없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Que Pena Contigo'는 '유감스럽다', '너를 볼 낯이 없다.'라는 뜻에 불과하다고 한다.(What a shame!)
이렇게 사람이 한없이 꼬아서 보면 꼬아서 볼 수 있고 그 사람의 속사정은 알고 보면 나의 부정적 생각과는 거리가 꽤나 먼 일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