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알고 있었고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으로 나하님 덕분에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영화 '너의 결혼식'을 보았다. 이 영화는 특이했다. 예고편이나 영화 소개편에서 왜 이렇게 스토리를 많이 보여주는 걸까 생각했는데 내가 봤던 부분은 도입부에 불과했다. 길지 않은 러닝타임 속에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다. 다소 산만해질 수 있는 구성인데 나름대로 재밌게 엮었다.
영화를 보고 선택과 '원망'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예전부터 지나치게 타인에게 영향을 줄까봐 두려워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 선택을 '나 때문에' 하게 될까 무서웠다. 누군가의 삶에 끼어들어가 조금이라도 변형을 일으킬까 전전긍긍했다.
웃긴다. 내가 무슨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중요한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과잉된 자의식에 시달렸을까?어떻게 보면 나를 굉장히 상처줬던 L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말대로 어마어마한 관종이었나보다.
왜 그랬을까. 좋은 결과보다는 항상 나쁜 결과를 염두했다. 그리고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원망의 대상으로 투영될까 두려웠다. 말도 안되지만 조용히 와서 조용히 살다가고 싶었다. 아무도 모를 만큼 가볍게,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자연속에서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꽃을 피우고 사라지는 길가의 이름 모를 작은 들꽃처럼, 하루살이처럼 살고 싶었다. 나의 존재가 그 누구의 삶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일으키지 않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게 없었다. 세상에 독립된 개체로 살다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의도에 집착했다. 본심이란 게 구분 가능하지도 않은데도 본심을 찾았다. 나와 그 사람을 분리했다.
'내가 아니었어도 그랬을 거야? 원래 네 생각이 그래? 나랑은 상관없지?'
그렇게 아프게 못을 박아야 했다.
늘 나를 짓눌리던 죄책감. 당사자는 이미 잊었을 일. 나는 부모님이 나 때문에 이혼하지 못했던 거라고 늘 생각했다. 내가 아플 때 의사는 부모님께 말했다.
지금 여기서 이혼하면 당신 딸 죽어요. 당분간 좋아질 때까지 참고 살아요.
나는 왜 또 그 말을 알아버렸을까. 내가 아니었으면 이혼했을 텐데. 다른 삶을 살았을텐데. 내가 그들의 인생 진로를 바꾼 기분이었다. 그래서 늘 미안했다. 나 때문에 참고 산 것 같아서 그들이 불행할때마다 나를 자착했다. 나는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안 아프고 싶었다. 말해주고 싶었다.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하셔도 된다고. 그 편이 차라리 견디기 쉽다고'
그래서 그 이후로 무언가 타인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치면 늘 두려웠다.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조금이라도 고려사항이 된다면 어떻게 하지? 이후에 그들이 불행해지고 조금이라도 나를 원망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너 때문이야...'
그 말이 무서웠다. 원망하지 않는다고 몇 번의 확답을 받고나서도 상황이 변하면 사람은 누군가를 원망하기 마련이다. 또 한 번 누군가의 원망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 말한마디가 실수임에도 진심이 아님에도 이별을 결정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나라도 헤어졌을 거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된 건 사람은 그다지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듣고 싶지 않으면 어차피 듣지 않는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들을 준비가 된 말만 받아들인다.
나때문이라는 생각도 오만이었다. 지금 엄마 아빠는 아주 잘 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난 후 그들이 이혼을 하지 않게 된 이유가 꼭 나 때문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선택은 어차피 다 자기가 하는 거다. 원망할 필요도 원망을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태어난 이상 엮이게 되고 엮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주고 받아야 한다. 그래서 때론 변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욱 더 내게 영향을 받고 나를 기점으로 변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나쁜일도 아니고 내가 책임져야 할 일도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원망할 필요도 원망할 이유도 없다. 모든 건 다 나의 선택이다. 알지도 못하는 일에 나조차도 똑바로 살지도 못하면서 겁없이 조언을 할 일도 경계할 일이지만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 살아갈거란 마음도 어리석다.
예전의 나라면 결혼하기 전에 물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너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 자신 있어?'
그러나 지금은 네가 나를 원망하게 된다 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것 또한 그냥 너의 선택일 뿐이니깐. 그냥 우린 그 자리에 있었고 서로 최선을 다하고 서로의 삶을 살아갔던 거고 잘 풀리든 안 풀리든 그냥 그렇게 흘러갔던 거니깐. 받아들여야 한다. 살면서 여전히 그걸 연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