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을 낙엽이 바람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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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미세먼지가 높던 오늘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나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바삐 걸었다. 과장님은 감탄하며 말했다.

OO씨, 오늘은 공원 좀 걸으면 안 될까요? 정말 낙엽이 너무 예쁘네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바람결에 맞춰 줄줄이 떨어지는 은행잎과 단풍잎이 거리로 쏟아지는 광경을 보았다. 진풍경이었다. 영화 속 장면으로 연출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럼요. 좋아요! 진짜 예쁘네요.

오랜만에 찾은 돈까스집은 그새 1000원이 올라있었다.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가 칼칼했던 얼큰돈까스. 묘하게도 갈 때마다 맛이 달라졌다. 다음엔 맛있을까. 우리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낙엽이 잔뜩 깔린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정말 너무 예뻐서 부인 보여주고 싶은데 너무 멀어서 오라고 하기가 그러네요.
점심 시간에 오라고 하세요. 하하하. 무리인가? 어쨌든 이 공원이 회사를 다니는 데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확실해요! 여기서 이런 멋진 장면을 볼 수 있다니

우리는 공원 한 가운데 멈춰서서 한동안 낙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관찰했다. 사람들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가을에 단풍놀이를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단풍이 아름답게 떨어지는 풍경이 있었다니. 놓치면 억울했을 것 같다.

과장님이 감성적인 사람이라 좋아요! 이렇게 점심시간에 단풍 보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좋구요.
OO씨 그 사진 잘 나왔는데 저 좀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하하. 그럼요!


어떤 기억은 매우 강렬하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라도 생생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4~5살 쯤 어린 나는 하얀 스타킹에 갈색 원피스를 입고 양갈래로 머리를 묶고는 엄마 아빠 오빠와 함께 집 근처에 있던 초등학교에 놀러 갔다. 그 때는 가을이었고 작은 숲에 낙엽이 잔뜩 쌓여 있었다.

오빠와 나는 낙엽 위에 누워 러브스토리 한 장면처럼 몸을 마구 휘적였다. 낙엽을 서로 던지고 놀며 즐거워했다. 흙이 묻는 것도 쌀쌀한 바람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나는 가을 낙엽에 둘러쌓인 아이였으니깐.

은행잎을 보면 어릴적 살던 천보연립주택이 생각난다. 17평 촌동네의 연립주택은 내게 완벽했다. 마당 약수터(?)에서 모두 식수를 길러 먹고 여름에는 평상에서 수박을 함께 나눠 먹었다. 내 또래 친구가 아주 많이 살기에 밖에 나가기만 하면 언제든 놀 수 있었다. 벽돌로 에스키모가 된 냥 이글루를 쌓는 놀이를 하기도 하고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엄마놀이를 하기도 했다. 가을엔 큰 행사가 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의 은행을 줍는 날이 되면 아침부터 고무장갑을 낀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인다. 아저씨가 나무를 흔들면 은행이 우수수수수 떨어지고 은행잎 사이의 은행을 줍는다. 밟으면 냄새가 나니 조심해야 한다.

아빠는 은행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빠는 뺀치를 이용해 은행 껍질을 깠다. 소중히 모아 말린 후 프라이팬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직접 구웠다. 아빠를 닮아 나도 은행을 좋아했다. 아빠는 하루에 5알 이상 은행을 먹어선 안된다고 했다.


점심시간 멈춰서 낙염을 보고나서야 깨닫는다. 나는 행복했구나. 나는 완벽한 어린시절을 가진 아이였구나. 언젠간 과장님과 함께한 오늘을 떠올리겠지.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 한 편의 수채화같은 공원이었다고. 가을이 생각보다 길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