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써보는 기묘하고 신비한 대문, 오늘 글엔 역시 이 대문이 어울릴 것 같아요. 역시 새해에도 열일하는 대문누나 @bbooaae님께 받았습니다.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거절 당하는 순간이 있다. 부탁을 했을 때 거절도 난감한 법이지만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거절은 마음에 대한 거절이다. 내가 조심스럽게 상대방에게 건넸던 작은 마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다. 예쁘게 포장해서 건넸던 내 소중했던 마음의 한 부분이 어쩌면 상대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포장지가 풀어진 채 바닥에 널부러지고 마는 때가 있다.
'Give and Take.' 그것은 때로는 예의고 상식이고 배려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관계를 가장 적확히 설명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때로는 아무 것도 되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끌리는 사람도 있다. 왠지 모르게 호감이 간다. '저 사람과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혼자만의 작은 기대를 담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두드린다. 혹시 나와 같은 마음일까? 아니 같은 마음은 아니더라도 내 애정을 받아줄 수 있을까? 우리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간혹 좋아했지만 어려워서 망설이고 있던 상대방에게 신호가 올 때가 있다. 그러면 뛸뜻이 기뻐져서 어린아이처럼 마구 설렌다. 그러다 혹시나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봐 그 마음을 억누르고 받기에 적당한 정도로 정제한 후 아무렇지 않은 듯 건넨다. '저도 조심스럽지만 당신이 좋습니다.'
그러나 역시 거절의 순간은 존재한다.
내가 기억하는 거절의 순간
21살 봉사동아리의 첫 후배가 들어왔다. 학년은 아래였지만 나와 동갑인 노란머리. 그는 이름이 조금 특이해서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질 않았다. 말이 많지 않았다. 그와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란 걸. 단체 생활에 조금 어려움이 있고 사람을 가리고 가끔씩 우울하기도 하다는 걸. 나는 그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 그와 곧 메신저 친구가 되었다. 집이 가까웠는데 그는 나와 다르게 노래를 부르는 걸 아주 좋아했다. 나는 노래를 듣는 걸 참 좋아했다. 같이 노래방에 가서 한 시간 넘게 그 혼자 노래를 불렀고 나는 진심을 다해 그 노래를 마음에 담았다. 그 때 키네틱 플로우의 '몽환의 숲'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그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몇 달이 되지 않아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넌 나와 달라. 넌 나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 그러니 날 이해하는 척 하는 건 그만 둬.
나는 지금도 그가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실수를 했거나 아니면 정말 그의 말대로 그를 이해하는 척 하는 나의 위선이 거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싫다는 사람에게 더 이상 무얼 할 수가 없었다. 그 거절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었다. 어차피 내가 그를 특별하게 생각했던 건 아무도 모르니깐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참 많이도 아팠다.
당시 내 남자친구는 그와 굉장히 친했다. 그 이후로도 그를 볼때마다 그의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노력했지만 늘 슬펐다. 오히려 그에겐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였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받지도 못할 마음을 줬던 것이다. 그건 20살이 넘어 먼저 마음을 열고 기대 없이 다가간 첫 관계였다. 어쩌면 그에게 거절당한 사실보다도 내 첫 용기에 대한 거부가 슬펐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전까지 오만하게도 '내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아도 모두가 나를 좋아하진 않아도 나와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인정해야 했다. 그럴 듯해보이는 인연도 나를 거절할 수 있는 거라고. 한눈에 내 사람이라고 믿었던 누군가도 어느날 갑자기 나를 거부할 수 있는 거구나라고. 그러면 꼼짝없이 내가 싫다해도 그 관계는 끝을 낼 수 밖에 없는 거구나.
나는 예민했고 생각이 많았고 때로는 상대방이 주지도 않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나는 흔히 말하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갖을만큼 성격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꽤 집요한 면이 있다.
거절의 경험은 늘어가고 세상엔 내게 맞는 사람보다는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그땐 맞았어도 시간이 지나면 주파수가 틀어져서 딴 세상 사는 사람마냥 엇갈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가끔은 모든 게 다 귀찮아져서 관계란 거 자체에 신경을 끄게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먼저 다가가게 된다. 친해지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면 어떻게든 또 한 번 시도해본다.
거절을 당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먼저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 거절을 당하고도 아프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릇이 굉장히 커서 세상 모든 풍파에도 허허실실 웃으며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거절에도 전혀 타격이 없는 관대한 고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고수가 아니다. 거절 당하면 여전히 아프다. 전혀 그릇이 크지 않다. 일일히 상처받는단 말이지. 거절 당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짊어지고도 잠깐의 민망한 순간과 아픔을 견디고 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손을 내미는 그 이유는 서른 번쯤의 거절뒤로 운 좋게 만나는 소중한 인연 하나가 가끔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아니면 이렇게 몇 천 번 거절당하다보면 아픔을 견디는 나의 그릇이 1mm쯤은 늘어날지도 모를 일이니깐. 지금까지 보면 그다지 효과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내일도 난 내 멋대로 오해를 한 채 손내밀 것이다. '혹시 저랑 친해지실래요?'
이 글을 스팀잇에 올리는 이유는 여기서도 몇 번 거절당한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아주 사소하고 별 거 아닌 일이다. 아마 그 상대방은 전혀 내게 그럴 의도가 없었을 것이고 기억도 못할 테지만 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군가를 만나도 구분을 두지 않는다. 현실에서 만나든 여행을 하다 만나든 채팅을 하다 만나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만나든 나라는 자아의 일관성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겐 현실 세계와 이 곳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다. 이건 애정을 갈구하는 찌질한 자기고백이다.
그러나 괜찮다. 진짜 괜찮다. 거절당하면 이젠 나도 '흥칫뿡!'하고 급히 내 마음을 다시 넣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말이다. 찌질하지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합리화다. Give and Take가 아니였던 나의 직감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흔한 Give and Take 관계로 급선회하는 방법이랄까.
그러나 Give and Take도 나와 취향이 잘맞다고 멋대로 라벨을 붙이는 관계도 그냥 스치는 인연도 멀어져버리는 안타가운 인연도 나의 소심함과 상관없이 모두 감사한 존재다. 그러니 거절 당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