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란 시간은 권태를 불러오기 충분하다.
10년간의 결혼생활이 그저 그렇게 끝난 후로 남은 건 두 딸 아이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이었다.
처음 이 곳에 가죽공방을 차리겠다고 말하자 주인은 나를 비웃듯 '잘해보슈-.'라는 말을 건넸다.
작은 가게를 계약하니 잔고는 0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돈도 집도 즐거움도 위스키 한 잔 마실 친구조차 없었다.
오로지 양육과 생존에 대한 책임감만이 날 살아 움직이게 했다.
내가 기댈 건 두 손 뿐이었다.
가죽을 다루는 일은 유일하게 자신있는 일이다.
카우보이 모자, 벨트, 가방, 지갑, 작은 주머니를 하나하나 만들어나갔다.
어느덧 벽면과 장식장이 제각각의 수공예 제품으로 가득찼다.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나의 시그니처가 안쪽에 새겨져 있다.
16시간 작은 작업공간 내에서 작업을 한다. 내내 가게는 열려있다.
오후 8시면 모두 문을 닫는 작은 마을에 우리 가게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
끼니는 챙겨먹지 않지만 매일 아침 집에서 손수 내린 드립커피를 텀블러에 가득 채워 온다.
이 마을에서 파는 커피는 최악이다.
영업엔 소질없었지만 비굴하지 않게 제 값을 받고 팔 수 있는 긍지가 대신 있었다.
살 생각도 없으면서 깎아달라 찔러보는 뜨내기 여행객은 무시한다.
그들은 내 예술 작품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
이내 나의 무관심에 그들은 물러가고 얼마가 되었든 내 작품을 가치있게 쳐주는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좋은 가죽이 있는 곳이라면 그리고 내 작품을 사줄만한 곳이라면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도 이동한다.
때로는 총구가 휘날리는 무법지대에서 말도 안되는 장사를 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태연하게도 고객들은 옆에 사람이 죽어나가도 내가 만든 카우보이 모자를 구매하고 현금을 건넸다.
6달 후, 큰 딸의 학자금과 작은 딸의 양육비를 매달 보낼 수 있을 만큼 가게는 자리잡았다.
공방을 키울 생각도 공방에서 함께 일할만한 사람을 구하는 것도 귀찮다.
그렇게 7년간 공방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매번 만드는 예술 작품들이 동이나면 다시 채워 넣으며 살았다.
매 달 부쳐주는 돈은 인출되겠지만 전 부인도 딸들과도 연락을 끊은지 오래다.
그들에게 내 돈이 제대로 전달되는지도 의문이지만 멈출 수는 없다.
그 7년의 삶을 지키기위해 필사적이었던 나날들을 떠올려본다.
아니 모르겠다. 나는 필사적이었던가.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아갔던 것 같다.
내 삶은 권태롭다. 권태로워서 다행이다.
권태로워지기 위해 7년이 걸렸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장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이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마을 버스를 탔다.
여행객이 많은 마을은 아니지만 특히 10월은 여행객이 없다.
모두 아는 얼굴들이다. 친근하게 안부를 주고 받는다. 지정석이나 다름 없는 맨 뒷자리에 올라탄다.
기사는 10분이나 늦었다. 느릿느릿 빵을 한 손에 들고 입에 빵가루를 잔뜩 묻히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운전석에 앉는다.
문이 닫힌다. 곧 이 마지막 버스는 출발할 것이다.
그 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 몸집만한 커다란 배낭을 낑낑메고 생기 넘치는 강아지같은 여자가 버스에 올라탄다.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는 불안한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창밖을 열심히 바라본다.
그녀는 이 곳이 처음인 게 확실하다. 특별히 미인은 아니다.
낯설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그녀같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무언가 시선을 잡아끄는 강렬한 힘이 있다.
권태로운 내 삶과 반대되는 이질적인 에너지가 있다. 경쾌함 혹은 발랄함?
어딘지 무모할 것 같은 결정을 내릴 것도 같다.
한참을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런 생각은 좋지않다. 얼른 공방으로 돌아가서 남은 작업을 하자. 출장의 성과가 좋았다.
공방 반 이상의 제품이 비워버렸다. 작업을 내내 해도 일주일은 걸린다.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도망치듯 문에서 내려 앞만 보고 걸어갔다.
"저기요! 혹시 여행자세요?"
나를 불러세우는 목소리에 뒤를 보았다.
그 순간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햇살처럼 웃었다.
태양을 바라보는 순례자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7년이란 시간의 권태로움은 그 찰나의 햇빛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보고 웃었고 나는 거짓말처럼 사랑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