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철학) 결혼과 순결의 의미

eunsik(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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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0대 중반의 남성입니다. 크게 순결이라는 말과 얽혀서 살아온 적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많이 적용되었습니다.

중년 남성인 제가 순결이라는 뜬금없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매우 이상할 겁니다.
더구나 저는 여성학자나 결혼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결혼에 대해 논할 수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직까지는 우리의 삶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 각자는 날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직접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만큼 각자 나름의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40대가 되면 과연 결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결혼 갱년기가 찾아온 셈이지요.

저는 왜 결혼을 하는지 자체가 여전히 의문이기도 했습니다. 왜 결혼은 우리를 얽매는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어도 인간은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는가?
더구나 인간은 자유로운데 결혼에 있어서 순결할 필요가 있는지, 그것 자체도 의문입니다.
그런데 순결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결혼한 후가 아니라 결혼 전에 오히려 더 많이 사용됩니다.
이것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아무런 제약도 없는데, 왜 결혼 전에 "순결"이라는 말이 사용되는지 자체가 의문입니다.

순결이란?

"순결"은 대체적으로 깨끗하다는 뜻인데, 그 반대는 깨끗하지 않다, 즉 "불결"이겠군요. 아무튼 순결은 좋은 의미가, 불결은 나쁜 의미가 담겨 있는데, 순결과 결혼이 연결됨으로써 결혼이나 성관계에 대해 미리 일정한 가치판단을 내리는 듯한 어감이 숨겨져 있습니다.

현재 민주사회의 가치판단에서는 종전부터 있어왔던 윤리나 도덕보다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합니다. 혼전순결을 지키든 말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혼전순결은 단순하게 결혼하기 전에는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말로서,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를 갖든 말든 개인의 의사에 따른 자유이겠지요. 저는 혼전순결을 지키겠다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방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혼전순결이라는 말로 부당한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언어가 인간을 지배하는데, 혼전순결이라는 말에 담긴 가치판단이 과연 타당한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이 조금 이상한 말입니다.

용어가 잘못되면 엉뚱한 행위를 하게 됩니다. 순결이라는 말은 성을 매우 편파적으로 보는 말입니다. 단순하게 "결혼 후 성관계"라고 표현하면 될 것입니다. 성관계와 청결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성관계를 통해서 더럽혀지는 대상은 무엇일까요? 몸일까요, 아니면 마음일까요? 도대체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관계를 통해서 몸이 더럽혀진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몸은 목욕을 통해서 깨끗해질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아마도 마음이 더렵혀진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마음을 볼 수가 없으니 과연 더러운지 깨끗한지를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깨끗함은 관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옳다 그르다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은 문제가 많습니다. "순결"은 성관계 자체를 그냥 더러운 것으로 매도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성관계 자체는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또 이 말은 단순한 가치판단만이 있을 뿐 객관적인 근거가 희박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혼전순결이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결혼 전에 한 성관계가 어떤 안 좋은 영향을 미쳐야만 의미가 있을 겁니다. 이 말에는 이미 성관계를 한 경험이 결혼 후 부부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담겨 있습니다. 혹은 성관계를 한 후에도 결혼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일 겁니다.

결혼 제도의 유래에 대한 의견

성관계가 깨끗함이나 불결함과 같은 판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가치중립적인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윤리적인 판단을 할 때에는 그에 앞서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의무를 전제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관계를 갖지 않아야 하는 보편적인 의무를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이런 의무가 있었다면 인류는 이 세상에서 없어졌을 겁니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녀가 태어나야 하니까요.

일반적으로 성관계는 허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장려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사회의 문화에 따라서 성관계가 허용되는 범위가 제한되어왔습니다. 제한의 범위는 주로 성관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것은 생물학적인 요인이 크게 좌우되었을 것입니다. 먼저 근친과의 성관계는 제한되었습니다. 근친간의 성관계가 유전학적으로 결함이 있는 후손을 낳게 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유전학적으로 이미 증명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근친간의 성관계도 허용되었다가, 나중에서야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금지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럼 근친이 아닌 상대 사이에는 무한정 허용되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네요. 유전학적으로는 유전자의 다양한 결합을 실험하기 위해서는 제한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남녀간의 결합에는 유전학적인 것보다는 경제적인 것이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요?

자연은 가능한 한 다양한 유전자 풀을 유지함으로써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자연의 억압을 벗어나는 경지에 이르렀고, 다양한 유전자 풀의 유지라는 목적보다는 문명이 요구하는 목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이상, 일정한 집단 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한 여성을 놓고 많은 남성이 과도하게 다투거나, 특정한 남성을 대상으로 여성들끼리 격렬하게 싸운다면 사회는 평화롭지 못할 것입니다. 사회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려는 합리적인 이성이 발동한 결과 1부1처제가 결국 승리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얼핏 보더라도 1부1처제는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매우 공평합니다. 더구나 유전적 다양성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1명의 남성이 수많은 여성을 거느리거나 1명의 여성이 수많은 남성을 거느리는 것보다 더 다양한 유전자간의 결합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1부1처제의 지속기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초에는 1부1처제가 자녀가 출생한 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간까지만 존속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면 기존 부부 사이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시도하게 하는 것이 유전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더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문화가 복잡해짐에 따라 자녀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점점 늘어났을 것입니다. 또한 자녀가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기간이 늘어나다 보면 그 전에 부부 사이에 성관계를 가져 새로운 자녀를 출생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 자녀가 독자적으로 생존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고, 결국에는 부부가 평생 동안 해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패턴으로 굳어졌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없었고 그냥 자녀 출산을 위한 성관계와 자녀 부양을 위한 유대관계만 있었을 겁니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당초에는 결혼과 성관계는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관계란 언제나 자녀의 출산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낳게 될 자녀를 돌볼 것이 확실한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고, 적어도 성관계를 하기 전에 그러한 확답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책임 지지 않는 남성에 대한 인기는 줄어들었을 것이며, 남성의 경우에도 여성이 자신의 자녀를 임신하였을 것이라고 확신할 경우에서야 태어난 아이를 돌볼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집단적 성관계가 있다면 남성들은 그 집단 내의 모든 여성의 자녀가 적게나마 자기의 자녀일 가능성이 있으므로 공동육아를 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는 성관계를 통제하는 방식이 매우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지속되는 1대 1의 경우에는 간편하지만, 집단적 성관계의 경우에는 파트너를 선정하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고,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사유재산제가 발달함에 따라 자녀의 양육에 필요한 재산은 집단에서 개개인에게 분할되기 때문에 1부1처제는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유재산이 불균등하게 배분되고, 더구나 권력이 왕에게 집중됨에 따라 일부 부자와 왕의 경우에는 다수의 처를 거느릴 권한이 부여되었을 것입니다. 1부다처제는 아마도 보편적인 제도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조선 시대와 같이 1부다처제가 허용되던 시대에도 대부분의 가족은 1부1처제를 근간으로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남녀의 성비가 1 대 1에 근접하는 만큼 가장 공평하고 가장 지속성이 있는 것은 1부1처제로의 회귀였을 것입니다.

정조 의무의 의미

아무튼 원래는 성관계와 결혼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먼저라고 하기 어려운 관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다만 1부1처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외부공표적 행위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성관계는 남들이 잘 알기 어려운 내밀한 행위이므로 누구와 누구가 성관계를 맺는지를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초 성관계가 이를 통해 출생할 자녀의 양육을 위해 서로 협력할 것을 전제로 한 남녀간의 신뢰관계에 기초한다고 할 때 남녀의 각자는 성관계를 하여 자녀의 출생이 가능하게 하였다면 다른 사람과의 성관계를 함으로써 그 신뢰를 깨뜨리는 짓을 하지 않을 책임을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면적 신뢰관계가 항상 제대로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따라서 집단 내부의 모든 구성원이 그러한 신뢰관계를 알고 서로 존중할 수 있도록 이를 외부에 알리는 공표행위가 필요합니다. 결국 결혼은 이러한 신뢰관계의 형성을 외부에 알리는 행위입니다. 즉 결혼이 남녀관계의 핵심이고 성관계란 이에 딸린 부수적인 행위가 아니라, 성관계에 따른 신뢰관계가 남녀관계의 핵심이고 결혼은 이러한 신뢰관계를 외부에 알리는 외피에 불과하다 할 수 있습니다. 법적으로 결혼은 국가기관에 신고를 통해서 성립하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관청에 신고한 것이 핵심은 아닙니다. 남녀 사이의 약속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주위의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결혼식이라는 의식이 핵심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조의 의무라는 것도 남녀의 성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생기는 것이지, 그 전에 생기는 의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조란 기본적으로 남에게 의리를 지키는 것인데,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에게 의리를 지킨다는 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결혼 여부보다는 성관계에 따른 의무가 더 중요해.

그렇다면 결혼과 성관계가 어떻게 분리되기 시작했을까요? 그것은 남녀 간의 내부적인 신뢰관계보다 외부적인 공표행위가 점점 더 중요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간이 서로에 대해서 신뢰를 갖고 그것을 견고하게 지킨다면 표피적인 결혼 공표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의무감보다는 욕망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입니다. 무엇인가 금지되는 것은 더 하려고 하는 욕구를 갖게 되니까요. 결국 결혼은 제도화되었고, 결혼관계를 파괴하는 성관계에 대해서는 법적인 처벌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남녀의 성관계도 범죄화되었을 것이고, 혼전순결이라는 단어는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달되면서 피임 기구나 피임 방법, 피임 약 등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성관계를 하더라도 자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제 성관계는 단순히 쾌락만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녀는 쾌락 추구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부수적인 사고로 취급되기도 합니다. 물론 피임이 없던 시대에도 반드시 자녀 출산만을 위해서 성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쾌락이나 남녀간의 관계확인 등의 용도로 성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결혼을 전제하지 않더라도 성관계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의 변화는 사회의 인식도 바꾸고 있습니다. 낙태와 같은 것도 생명의 관점보다는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통제력 내지는 선택권의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여성의 선택권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권의 남용이 오히려 여성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여성의 선택권이 강화될수록 남성은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찾게 되는 셈입니다.

결국 인간의 생명은 선택의 대상으로 변했습니다. 태아가 온전한 생명이냐는 논쟁을 차지하고서라도 태아가 태어나서 온전한 생명이 될 수 있느냐의 여부를 이제는 인간의 계산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아이가 적게 출산됨에 따라 아이의 인권을 더 보호한다든지, 아이에 대한 양육에 더욱 신경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념상 인간의 숫자는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자신의 삶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불행을 막는 방법으로 활용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혼외 임신에 따른 불행을 없애는 방법은 혼외 출생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미혼모를 더 잘 보호하고 그들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인식을 사라지게 하는 것도 유용할 것입니다. 아무튼 결혼과 성관계가 서로 별개로서 각각 개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법은 미혼자인 성인이나 미성년자 사이의 성관계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성인이 미성년자를 금전 등의 수단으로 유혹하거나, 성을 돈으로 사고 팔거나 하는 행위는 처벌합니다. 과거에는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외의 자와 성관계하는 것을 처벌했으나, 최근 위헌판결로 처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과거부터 미혼자 사이의 성관계를 처벌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현재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게 되는 듯한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결혼이란 지속적인 성관계 여부를 외부에 알리는 행위에 불과해

혼전순결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 많이 돌아왔군요. 저는 기본적으로 결혼이란 남녀 사이의 신뢰관계를 보호하기 위한 외부적인 공표행위라고 생각하고, 결혼 전에는 순결 여부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후에서야 그 계약을 깨뜨렸느냐의 문제가 발생할 뿐입니다. 어느 남녀가 자신의 행위가 갖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는 마음자세가 있다면 상호 합의를 한다면 충분히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실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므로, 가능하다면 결혼이라는 대외적 공표행위를 통해서 그러한 신뢰관계를 외부화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이어트를 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의지를 보조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에게 다이어트를 할 것이니까 도와달라는 공표행위를 합니다. 하물며 인간 행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남녀관계의 핵심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력을 믿기보다는 외부인에게 알리고 자신의 결심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식이 필요한 겁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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