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JOHN입니다.
저는 경제학을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개별 인간의 행태는 물론이고, 인간에 관한 집합적 개념(집단, 국가, 세계)도 당연한 탐구대상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집합적 개념(흔히 거시경제학이라고 하죠)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경제성장(Growth)의 제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성장이론은 '한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는 근원과 심원은 무엇이고, 그것들의 역학관계는 무엇이며 또 국가 간 소득격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몹시 흥미로운 문제들을 천착하고 규명하려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언제 한 번 '긴 연재'를 통해 논의해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에 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아래 그림을 한 번 보세요! 지금 시대의 경제성장률은 매년 등락이 있긴 하지만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지난 2천 년 간 세계의 GDP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묘사하는 그림을 보면, 오늘날의 성장경험은 아주 최근에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산업혁명 이후에야 경제는 성장하게 됐고, 이전의 역사와 구분되는 확실한 분기점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생겨났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라고 부릅니다. 과거 수천 년간은 왜 경제의 성장이 정체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인류의 역사가 성장의 역사로 전환된 구체적인 요인들은 과연 무엇일까, 경제성장론은 이것을 탐구합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탐구주제는 국가 간 소득격차입니다. 아래의 또 다른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지구상의 일부 지역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지만 또 다른 지역은 궁핍한 삶을 살죠. 왜 어떤 국가는 성장하며 다른 국가는 그렇지 못한가, 이에 관한 근원적 물음을 탐구하는 것은 경제성장론의 또 다른 사명입니다.
Source : Daniel Rodrik, In Search of Prosperity: Analytic Narratives on Economic Growth
다이아몬드가 주장하는 문명 간 차이를 유발한 중대한 요인은 식량생산이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동식물의 종류가 다양한 정도, 또는 그 개체 수가 많고 적음이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처럼 어떤 지역은 '작물화와 가축화'를 하는 데 적합한 동식물들이 풍족한가하면, 아프리카처럼 어떤 지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바로 이 식생 차이를 결정짓는 환경이 모든 문명의 차이를 결정짓게 된다. 중국 등 유라시아의 민족들은 풍부한 식생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우연히, 나중에는 의도적으로 벼를 작물화하고, 소, 돼지 등의 동물을 가축화하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 가축과 유용한 식물들을 소유하게 됨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같은 면적의 똑같은 땅에 계속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처럼 가축화 및 작물화를 할 수 없는 지리적 환경에서는 원주민들이 정착하기 보다는 음식을 찾아 끊임없이 유랑생활을 하며 원시적인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채집과 수렵을 통해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야생 동식물종은 아주 제한적이고, 개체 수 또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한적인 동식물종들을 선택하여 지속적으로 키움으로써, 즉 가축화하고 작물화한다면 같은 면적에서 얻을 수 있는 식품의 열량은 아주 많아지게 된다.
이집트 같은 나라들은 원래의 지리적 환경이, 식생이 풍부하지 못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운 서남아시아에서 가축과 작물을 들여와 식량 생산을 시작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가축과 작물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 위도나 대륙의 축이라는 점이다.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처럼 대륙의 축이 남북방향인 곳은 전파 속도가 아주 더뎠고, 한 대륙에 다른 위도 상에 있는 민족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계절적, 기후적 차이에 의해 작물의 생장이나 발아 등이 영향을 받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유라시아처럼 대륙의 축이 동서방향인 곳은 그 전파의 속도가 매우 빨랐는데, 이는 낮의 길이가 같거나 계절의 변화가 동일한 등 많은 요인들이 전파되는 지역과 환경적으로 유사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라시아는 다른 대륙보다 더 빠른 식량 생산이 가능했지만,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지리적인 환경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가축과 작물을 소유하게 된 민족들은, 가축으로부터는 고기와 젖, 비료, 동물성 섬유 등을 얻었고 농업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가축으로부터 얻은 고기와 젖은, 인간에게 영양분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었다. 또 야크나 소를 이용함으로써 종전에 비해 경작지가 크게 늘어났고, 비료를 쓰면서 수확량이 급증했다. 점차 식량 생산이 많아지면서 잉여생산물이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점차적으로 남아도는 생산물들을 저장하게 되면서 인구는 안정적으로 급증하게 되었다. 정착민들이 같은 면적의 땅에 의존하여 생존할 수 있는 인구가 유랑민들에 비해 10배 내지 100배까지 많아지게 되면서, 정주형停住型 사회는 어떤 사회보다 인구가 많아지게 되었으므로,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고 집단의 기록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문자가 발명되었고, 집단 간 또는 개인 간의 의사결정을 위해 점차 정치적 조직이 생겨났다.
식량의 증식과 잉여는 모든 인구가 식량 생산에 몰두하지 않아도 됨을 의미했다. 인간들은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탈피해 각종 노동과 정력을 식량 생산이 아닌 다른 기능을 전문화시키는 데 쓸 수 있게 되었다. 잉여 생산은 정복 전쟁에 종교적인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제들을 먹여 살리고, 칼과 총을 생산할 금속 기술자 등 장인을 먹여 살렸으며, 정보와 사실을 기록할 필사筆士도 먹여 살렸다. 점차 사회의 기술과 문화, 정치와 경제는 복잡화되고 전문화되어 갔다. 여러 분야에서 발전에 꼬리를 문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급기야 세계에서 유라시아 대륙은 가장 빠르게 제국과 총, 쇠 그리고 문자가 발달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위에 묘사한 역사는 거의 유럽인들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총기, 종교, 정치조직, 문자, 쇠붙이 등을 이용해 많은 지역을 정복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다른 민족들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세균이다. 식량생산을 위한 가축화는 필수적이었고, 이때 대규모 인구 집단에서 발병하거나 혹은 동물들의 질병에서 진화한 천연두, 페스트, 홍역 등 많은 질병들이 생겨났다. 상당한 유럽인들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들은 점차 질병에 대한 면역을 갖게 되었으며 대규모 인구집단인 유럽은 높은 출생률로써 질병에 의해 사망한 인구들을 다시 채우곤 했다. 정복 과정에서 병원균을 가진 유럽인들이 원주민을 침략하면서 세균이 원주민들에게 감염되었고, 지독한 병원균으로 원주민의 90%를 살상하거나 전멸시키곤 했다. 소규모 인구집단인 많은 원주민 부족들은 그 세균에 대비할 방책도 없었고, 인구 수 또한 너무 적어 면역체계를 가질 수도 없었다. 한때 유럽인들은 세균을 이용하여, 또 보조적으로 총과 칼을 이용하여 거의 모든 세계를 지배했다.
위에서 보듯이 전 세계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에서 총과 균 그리고 쇠가 가장 먼저 발달하게 된 것은 모두 식량생산이라는 것에 기인한다. 그리고 식량생산은 순전히 지리적 환경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음직하다. 백인이 아닌, 흑인들이 과거 백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연히 유라시아에 정착하게 되었다면 현재의 유럽인들은 백인이 아닌 흑인과 같은 유색인종이었을 것이고, 흑인이 백인을 지배한 역사로 바뀌어 있지 않을까.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열대지방에 가까운 국가들은 소득이 낮고,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국가들은 소득수준이 높다. 이런 흥미로운 사실은 다이아몬드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지리(Geography)가 국가 간 소득격차에 직접적이고도 명백한 결정요인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 열대지역의 국가들이 빈곤한 것이 정말 '지리적 조건에 기초한 기후환경' 때문이었을까? 이를 파헤치면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열대지역 대부분의 국가들은 사회하부구조(Social Infrastructure)가 부실하다. 사회하부구조는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사적재산권의 존중과 법치주의, 경제의 개방성, 민주주의와 부정부패 등을 비롯한 제도 등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몇 가지 물음이 파생된다. 첫째, 정말 지리가 소득에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둘째, (지리적 요인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면)사회하부구조 요인이 소득에 중요한 요인일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결정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셋째, 지리와 사회하부구조가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가? 이런 질문들은 최근 경제성장론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고, 방대한 저작들이 있다.
한 가지를 간략히 소개한다. Acemoglu, Johnson and Robinson(2001)은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저명한 논문이다. 이들은 지리와 사회하부구조를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식민주의라고 주장한다. 식민주의 시대에 서구열강은 지리적 차이가 있는 식민지에 대해 다른 접근법을 취했고, 이 차별화는 상이한 제도를 자리잡게 함으로써 소득수준에 항구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국과 북한이다. 양국은 지리적인 차이, 역사 및 문화적 신념 등이 차이가 거의 없었음에도, 분단 이후 결정된 제도상의 차이가 이후 항구적인 소득차이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지리적 요인이 중요하긴 하겠지만,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하부구조 요인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사견으로도 지리적 요인이 중요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절대적이진 않다고 생각한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이후 경제성장에 관한 연재에서 논하기로 하자.
어떻게 보면 문명과 인류의 역사는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닌 것 같다. 코르테스가 총과 균, 그리고 쇠를 가진 400명 남짓의 군사를 이끌고 100만의 아스텍 문명을 짓밟은 것처럼, 또 피사로가 200명 남짓의 군사로 수백만의 잉카문명을 멸망시킨 것처럼, 그리고 유럽의 여러 제국주의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은 외모, 피부색, 언어 등이 다른 집단들을 만날 때 언제나 적대적이었다." 총으로 약탈하고, 균으로 죽였으며, 쇠로 정복했다. 그렇게 우리 문화는 익숙한 것에는 언제나 우호적이었고, 낯선 것에는 항상 적대적이었다. 내가 『총, 균, 쇠』를 보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관용tolerance의 필요성이었다.
"지리적 요인이 성장을 결정하는 심대하고도 결정적인 요인이라면, 우리는 아 사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총, 균, 쇠』는 다음의 기억할 필요가 있는교훈들을 알려준다.
(1) 현재 살고 있는 이 문명이, 결코 민족 스스로의 위대함과 자력으로 이룬 것이 아님을. (2) 또, 환경에 의해 우연히 얻은 그 문명의 힘으로, 많은 약자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며 발전해 왔다는 것을. (3) 그리고 똑같은 환경과 기회가 주어졌다면, 현재 낙후된 환경에 처해있는 많은 원주민들이 우리처럼 큰 발전과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을.
더 이상 세계적으로 부유한 민족들에 대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말길. 더 이상 많은 원주민들과 흑인들을 미개하고 야만적이라고 생각하지도, 멸시하지도 말길.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며, 똑같은 권리와 자유를 지닌 존재다. 우리는 인권을 가진 하나의 주체로 존중받길 원하고, 또 우리는 흔히 사회문화적으로, 다른 백인민족들을 더 존중해주고 있다. 그렇듯이 우리는 어떤 원주민들에게도 인종, 민족, 피부색, 언어 등을 잣대로 차별할 것이 아니라, 똑같이 인권을 가진 경험의 주체로 대해야 한다. 나를 우리 사회는 (정말 우리가 갖고 있는 이 부유함이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된 것이고, 또 많은 약자들을 협잡하고, 정복해서 얻은 것이라면)그들이 처한 낙후된 환경에 언제나 관심을 기울일 의무가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믿는다. 총과 균, 그리고 쇠로 억압했던 사회보다 인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관용寬容'의 사회가 더 우월한 사회임을. 그리고 언젠가 우리 인류도 그런 역사를 갖게 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