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번째 대선투표였다. 누구에게 표를 던지고 싶지 않아도 던져야 했다. 나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복무중이었기 때문이다. 하고싶지 않아도 강제적으로 투표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를 찍었다. 그리고 일년 뒤 그의 취임식을 취사반 휴게실에서 보게되었다. 나는 취사병 출신이 아니다. 취임식이 열리는 그 시간에 취사병들은 휴게실에 들어올 수 없다. 밥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운행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았던, 부식차 운전병이라 가능했다.(운전병은 꿀 빠는 보직이 절대 아닙니다. 저도 다른 때는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했습니다...) 그때 마침 주임상사가 들이닥쳤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불 같이 화를 내었겠지만, tv에 나오는 장면을 보고는 돌아서며 조금만 보다가 내려가라 말했다. 그는 얼마후 비리로 군복을 벗었다.
제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손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상대후보들에게 내 잘못된 선택의 죄를 떠넘겼다. 당신들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배우며 우리는 이 문장들을 한번씩은 보고 배웠다.
지금 글의 제목을 생각해내며 나는 스스로 칭찬해마지 않았다. 이 날을 위해 배웠었던가. 그리고 띄어쓰기가 아닌 언어유희로 풀어낸 내 자신이 뿌듯했다. (벌써 누가 선점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으므로 어디서 배껴온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카다스와 같은 언허유희는 달콤하면서도 씁쓸하다.
(..........) MB 가방에 들어갔다.
(..........) MB가 방에 들어간다.
(..........) 안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들어갈 것이다. 일부러 비워두었다. 각자 육성으로 혹은 마음속으로 외쳐보자. (참고한 문장의 들어가신다는 표현은 쓰고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 문장에도 갔다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아직 간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어 씁쓸하다. 달콤해지고 싶다.)
문득 그의 별명이 생각나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란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읽은지가 오래되어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다시 꺼내어 대충 훑어보니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그도 이제 일생일대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지, 어떻게 하면 치즈를 빼앗기지 않을런지, 다 먹어치우기엔 너무 많다는 걸 알기나 알까.
그 치즈는 누가 만들어 둔 것일까. 그 치즈가 향할 곳은 그의 가방이었을까? 옮겨놓은 치즈의 양은 어마어마했지만 그의 가방은 좀처럼 배가 부를 줄 몰랐다. 티도 나질 않았다. 가방은 마술을 부리는 듯 환전해 사람들의 이목에서 벗어났다. 백원짜리 오만개를 가방에 넣는 것보다는 오만원권 백장을 넣는 것이 티가 나질 않는다. 결국 그 치즈는 누가 만들어 둔 것일까? 우리의 피와 땀이 어린 그 치즈들이 향할 곳이 그의 가방이었을까?
딴지를 거는 털보아저씨를 만난 것이 이십여년은 된 것 같다. 그는 나의 평범하지 않았던 친구가 보는 평범하지 않은 신문을 발간하는 총수였다.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래서 범상치 않은 신문을 읽었나보다. 나는 호기심에 처음에는 재미를 두었으나, 이내 관심을 걷어두었다. 그리고 다시 4년전 4월 어느 날 털보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전에는 범상치 않은 세명과 어울려 다니더니 갖은 송사에 휘말렸었나 보다. 그러다 이제는 열심히 닭을 튀겨내고 있었다. 상호가 바뀌는 고초아닌 고초도 겪었었나보다. 열심히 정주행을 하다보니 알게되었다. 그 전 상호의 주인이 그에게 딴지를 걸지 않았다면 브랜드 이름을 널리 알릴 기회가 되었을텐데, 아 이미 유명했으니 후발주자에게 양보한 것인가...
털보아저씨는 닭집을 그만두고 공중파에 입성했다. 재야에 떠돌던 그가 이제는 기득권들의 세력까지 올라선 것이다. 그렇다고 재야의 그곳을 버리지 않았다. 가카를 배웅하는 방송을 이어갔다. 처음 시작을 함께했지만 몇회까지 갈 것인지 궁금했다. 길어지면 또 다시 송사에 휘말릴텐데. 그런데 결국 배웅하고 말았다, 아직 전인가.
그를 고깝게 보는 시선들이 이제 많아졌다. 딴지는 20년동안 주구장창 걸어왔는데 앞의 10년동안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새 기득권들, 자신들의 목줄을 죄여오니 그는 공격의 대상이 되어갔다. 그의 건방져보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도 한몫했으리라.
어떻게 보면 그는 세명의 대통령의 운명을 갈라놓은 헌정 사상 유례없는 인물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두명이 아니고 세명이라 한 것은 그를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데 이렇게 길어지니 자괴감이 든다...
아무튼, 기득권들이 해내지 못한 일들을 그는 해내었다. 그리고 그 기득권의 정점 가운데 몇명을 끌어내었다. 메이저 언론사도 못한 것을 그는 재야에서 해내었다. 그 동안 기득권의 줄을 잡지 않은 얼마나 많은 재야의 인물들이 우리의 시선에서 멀어져갔을까.
이제 우리의 수많은 치즈를 먹어치운 MB의 가방을 열어 볼 차례이다. 그의 후임의 방호수와 그의 사무실 호수가 일치하는 평행이론처럼 그녀의 옆방으로 들어갈 차례이다. 나는 그가 그녀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더 나쁜 것들을 잡아야 한다.
근데 왜 자꾸 미뤄지는 것일까. 아직도 눈치볼 게 남은 것일까. 더 꼼꼼하게 보려는 것일까. 후자이리라 꼭 그렇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