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을 쓰다가 횡설수설인 것 같아 다음에 쓰기로 한다.
오늘의 그 장소를 고른 어떤 누군가의 그 무엇의 의중을 알 것 같다.
전과는 다르게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행사를 진행해서
태풍이 열도를 뚫고 오든, 생각치도 못 한 땡볕이 내리쬐는
그 어떤 난관을 예상했다고 믿는 나는
행사를 지휘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의 혜안에 탄복한다.
역사적인 판문점 정상회담,
시청률 낮은 아침이 아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저녁시간대에 치뤄진 국군의 날 행사.
모두 그가 진행한 행사였다.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지은 독립기념관에서 행사를 진행 할 생각을 하고,
콘크리트로 목조 건축을 흉내만 내 지어진 공간이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처마를 발견하지 않았나.
공간이 때로는 삶을 지배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발견해낼 때
빛 좋은 개살구가 비로소 맛 좋은 살구가 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광복회장 말, 별 말도 아니구만 소란이다.
몇 일 전에 내가 올린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인용하는데...
소오름...
맞다.
독립기념관의 건축은 애시당초 잘 못 지어졌다.
목조건축의 껍데기만 가져오고 그 안에 담긴 알맹이는 가져오지 못했다.
청와대도 그러하다.
그 시대가 그러했다.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지어지면 짓는 과정은 중요치 않았으니까.
그렇게 지은 건축은 근본이 없어 의식이 흐려진다.
'건축' 또한 왜놈말인데.
긴 글 지우고 또 다시 쓰는데 또 길게 쓰네.
아무튼, 보이는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건물 밖의 껍데기는 갈아치우더라도
우리 내면의 보이지 않는 것들의 리모델링은 어찌할까.
철거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물론, 그 로 인한 보이지 않았던 예산은 덤이고.
의식있는 건축가에게는
역사가 있는 땅위의 건물을 고쳐 짓는 것이
맨 땅위에 새 건물을 올리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성룡 건축가가 다시 지은 선유도 공원은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례이다.
건축가로서 대단은 하다지만 동대문에 이 땅의 역사도 모르는 이방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지은 현재의 DDP보다는 조성룡이 계획했던 안이 통과됐다면 그 풍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휘황찬란하게 자신의 업적도 빛날 것 같아 자기 시대에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려던,
껍데기만 중요시 여기던 한 도시의 우두머리만 아니였으면 말이다.
그것 또한 좋은 본보기가 되는 사례이다.
그 잘못된 신념의 철거가 힘들겠지만.
허망하게 허물어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찌 다시 지어질까.
아마 우리 시대에 다시 예전의 모습을 보지 못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와는 보이지 않는 생각들이 다르니까.
아마도, 우리 시대에 다시 지어 새로 선보인다면
그 전과는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의 껍데기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 담은 마음은 그대로인채.
숭례문은 어떠한가.
그 또한 허망하게 무너졌지만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복원해놓고 전보다 담벼락 조금 늘었다고 으시대는 윗놈들이나, 예전같이 다시 돌아왔다고 부실 시공은 나몰라라 하는 우리들.
싸구려 페인트를 발라대서 단청은 벗겨질대로 벗겨지고 대목수라는 작자는 기증된 고목을 지것과 바꿔치우고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그 누구의 임기내에 끝낸 복원.
헌데, 그 누구하나 잘못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 이 땅 위의 사람들.
숭례문만 불쌍하다.
아직도 공간을 2D의 평수대로 팔고 사는
집에 살고 있지 않고,
집을 팔고 사는 것이 더 우선으로 여기는
우리가 그렇다.
소고기는 3D로 사서 먹으면서 말이다.
와규같이 기름진 고기의 입맛에 길들여진 걸
건강한 입맛으로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멀고 먼, 건강한 사육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가깝고 가까운, 우리의 입맛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