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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esa224입니다. 오늘은 미술관 투어 6번째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루브르 박물관 이야기입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스위스에 갔다가 독일 친척집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여행지 프랑스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독일에서 프랑스까지는 대략 5시간정도 걸렸던것 같습니다. 그것도 고속열차를 타고도 말이죠
파리에 처음 도착해서 본것은 우리나라 KTX같이 생긴 TGV였습니다. 뭐 KTX자체가 프랑스 기술이니 비슷하게 생긴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역에서 내려서 친절한 여행센터에서 숙소를 잡았습니다. 여행센터 직원이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운이 좋다고 그러더군여. 적절한 가격에 루브르 박물관이 코앞인 곳에 숙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숙소로 간뒤에 바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숙소로 가는길에 파리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이라기보다는 지하 버스 같았습니다. 사진기가 좀 옛날거라 안보이실 수도 있는데, 철바퀴가 아닌 고무바퀴였습니다. 즉 타이어였던 것이죠.
역에서 내리니 바로 루브르 박물관이 보였습니다.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여러 설명을 들은뒤에 바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프랑스 왕실의 왕궁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뒤 프랑스 대혁명이후에는 정부기관으로 쓰이다가 발물관이 되었다고 하지요.
루브르 박물관의 상징중 하나인 유리 피라미드입니다. 중국인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하는데 처음 들어설때는 마치 에펠탑 처럼 사람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하죠. 어울리지 않는다, 이게 뭐냐 등등 그러나 요즘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입니다 ^^
박물관에 들어가보니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처럼 관객수 제한도 하지 않고, 카메라로 사진찍는거 금지도 아니니 좋았는데, 이탈리아 박물관보다는 한 3배쯤 많았습니다. 크기는 두배쯤 되는것 같은데 사람이 북적북적하는건 똑같더군요. 저 멀리 아주 유명한 조각상이 보입니다 ㅎㅎ
승리의 여신 니케 신상입니다. 원래는 얼굴도 있고, 좀더 완벽한 상태로 조각되어겠지만 오래되어서 반쯤 박살난 상태로 발굴되었다고하죠. 원래는 로도스 섬에 있었다는데 어쩌다 프랑스까지 오게되었는지 ^^; 원래는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며 만든거라 뱃머리 같은 받침대 위에있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같이 발굴이 되었는데, 그건 파손 상태가 심해 어쩔수 없이 다른곳에 올려 놓은거라고 합니다.
좀 더 걷다보니 이제 그림이 많은 방이 나오더군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보니, 뭔가 큰 대작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중 하나인 암굴의 성모입니다. 특이하게도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만 그려져 있는게 아니라 세례요한과 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이 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렸을까 많이들 추측하는 그림 중 하나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대작입니다. 근데 이게 정확히 무슨 그림인지 생각이 안나네요 ㅠ
저기 사람이 엄청 몰려있는데, 그림이 참 작군요. 뭐길래 저렇게 바글바글할까요?
네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모나리자가 있는 곳입니다. 요즘은 저렇게 사람이 몰리니 아예 다른곳으로 옮기고 사람도 통제한다고 하는데 제가 갔을때만해도 저렇게 북적북적거렸습니다.
인파를 뚫고 좀더 가까이서 찍어봤습니다.
모나리자가 있는 방에서 벗어나니 사람들이 좀 한산해졌습니다. 차분하게 그림을 감상하면서 지나갈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프랑스 박물관이니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의 그림이 빠질수가 없죠? 나폴레옹은 그림을 통해 일종의 언론플레이를 즐겨 했는데, 나폴레옹 시대에 그려진 그림들 대부분이 이런 나폴레옹의 언론 플레이용 작품들이라, 실상은 후대의 작가들의 상상화 속에서만 알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나폴레옹이 주인공인만큼 나폴레옹을 엄청 미화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의 경우는 나폴레옹이 등장하지만 상상화입니다. 심지어 없던 이야기를 언론 플레이용으로 그린 것이죠. 때는 나폴레옹이 아직 황제가 되기전 프랑스 혁명정부의 촉망받던 장군시절이야기입니다. 그는 뜬금없이 영국을 견제하고자 이집트 원정을 기획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집트는 오스만투르크 즉 터키의 명목상 영토였고, 터키는 프랑스의 오랜 친구였죠.
-약 200여년간 친한 관계였다고 합니다-그런데 프랑스 군이 그런 터키 영토로 처들어갔으니 친구관계는 파탄났고, 터키는 영국과 손잡고 나폴레옹을 막으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군은 순조롭게 이집트를 점령했고, 시리아지방까지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터키군과 영국군이 막아섰고, 설상가상으로 프랑스군에는 페스트가 유행하기 시작했죠.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페스트가 걸린 프랑스 군사들을 위로하는 그림입니다만, 실제로 나폴레옹은 페스트가 무서워서 병원근처에 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훗날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고 자기를 변호하고자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ㅎㅎ
이 그림은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는 작품입니다.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로 향하던 메두사호는 풍랑을 만나 침몰위기에 빠집니다. 그러자 임시 방편으로 뗏목을 만들어 서로서로 엮어서 탈출을 감행했으나 대양에서 밧줄이 끊어져 뗏목들은 서로 뿔뿔히 흩어졌죠. 그리고 부족한 물과 식량때문에 내분이 벌어져 서로 죽고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고, 구조선이 이들을 구조했을때는 15명의 생존자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끔찍한 사건을 그리고자했던 제리코는 생존자들을 일일히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작업실에 뗏목을 가져다 놓고, 경직된 시체를 가져다가 일일히 포즈를 맞춰보고 또 자기와 친한사람들에게 이 포즈 저 포즈 취하게 해서 이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대에 큰 명성을 얻었지만 안탑깝게도 일찍 요절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따르던 사람중에 한 사람이 또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죠.
바로 이 그림을 그린 들라쿠르아 입니다. 제리코가 한참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릴때 들라크루아보고 포즈좀 취해달라고 했었죠. 그래서 들라크루아가 제리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제리코의 사후 그려졌는데, 제리코를 생각하며 이스터 에그처럼 그려넣은게 있다고 합니다. 두작품을 비교해 보시면서 과연 어떤 요소를 집어넣어서 제리코를 기념했는지......
다음편에서 계속 쓰도록 하겠습니다 ^^
힌트. 제리코 그림에서 사람들 머리로 살짝 가려진 부분을 자세히 봐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