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있을(?) 잡다한 상식 34편입니다.
오늘은 메이데이. 5월 1일 노동절이죠. 노동절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19세기 기계화된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로 인해, 공장주인 즉 자본가는 돈을 엄청 벌어들입니다. 하지만 그 돈을 벌어주는 노동자들의 처우는 처참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싼값에 쓰는건 일상이었고, 하루 18시간씩 일을 시키는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해고도 쉬웠고 산업재해로 인한 보상같은건 꿈도 못꾸던 시기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기계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기계 고장같은걸 고쳤다는데......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은 인간적인 삶을 위해 단결하여 투쟁하기 시작했고, 점차 8시간 노동이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권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시작합니다. 그게 1800년대 중반의 일이었죠. 특히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이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에 눈을 떠 결집하자 정치인들이나 부자들도 협상테이블에 나올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유럽권에서 노동자들의 처우가 향상되던 시기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여전히 14~18시간씩 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경제가 발전하던 시기였던 것도 있고, 유럽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민오니 노동력은 넘쳐났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쉽게 단합하지 못하기도 했지요. 거기에 정치인들도 대부분 노동자의 처우 향상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노동자들도 이제 단합하기 시작했고, 여러번 파업이나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경찰들이나 자본가들에 의해 고용된 마피아나 갱들에 의해 강제해산당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1886년 5월 1일 시카고에서 약 8만명의 노동자와 가족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의 주도로 대규모 시위가 열립니다. 8시간 노동을 보장해달라는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위가 계속되던 5월 3일 시카고 인근 맥코믹 공장에서 시위하던 노동자들을 해산하기위해 경찰들이 투입되었고, 경찰이 발포하여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사건을 규탄하기 위해 5월 4일 노동자들이 헤이마켓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집니다. 평화롭게 진행되던 시위가 오후 10시 30분쯤 누군가가 경찰쪽을 향해 사제폭탄을 던지면서 끔찍한 사건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 폭탄으로 경찰 한명이 즉사하고 6명이 중상을 입습니다.
경찰은 바로 시위대 쪽으로 발포했고, 시위대 쪽에서도 7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후 미국정부는 이 시위를 주도한 노동운동가 8명을 긴급체포했고, 7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그후 양심있는 정치가들에 의해 일반 노동자들은 사면되었지만, 8명중에 5명이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폭탄을 만든 사람은 사형선고를 받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그뒤로도 시위가 계속되어 마침내 미국에서도 8시간 노동을 현실화시키긴 하지만 그건 몇년지나고 나서의 일이 됩니다. 이후 1889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서 각국의 노동자들이 모여 논의 끝에 첫번째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던 5월 1일을 노동자의 날이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후 유럽권과 사회주의권 그리고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끼쳐서 5월 1일이 노동절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9월 첫째주 월요일이 래이버데이, 즉 노동절 공휴일입니다. 왜 전 세계와 다르게 혼자 9월에하냐하면, 노동운동을 계속 탄압해왔기 때문이죠...... 헤이마켓 사건이후에도 많은 미국역사학자들이 노동자들이 잘못했다 이런식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었고, 정부도 노동자들 보다는 자본가들의 편이었기 때문에 헤이마켓 사건과는 전혀 연관없는 같은 년도 9월 5일에 일어난 다른 시위를 시초로 삼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날로 커지는 인터내셔널 공산당 계열과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고요.
한때 냉전시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갈등이 심했을때는 노동절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약간 꺼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쪽에서는 대대적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하죠. 현재도 중국이나 북한은 크게 보낸다고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당연시 되는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을 했던 노동절의 유래를 알고나니 마음이 무겁고 숙연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