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아두면 쓸데있을(?) 잡다한 상식 11편입니다.
오늘은 이슬람의 최대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합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이슬람을 믿는 인구는 약 18억명정도 됩니다.
그리고 이 지도에서보시다시피 이슬람의 대부분은 수니파입니다. 시아파는 이란과 이라크 일부정도에서 밖에 믿지 않아요. 비율상으로는 거의 80%에 달하는 이슬람인들이 수니파를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나누어지게 되었나?
이슬람은 7세기경 예언자 무함마드가 창시한 이래로 점차 아랍을 넘어 당시 동로마와 페르시아 제국을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무함마드 생전에 이슬람이 커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워낙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무함마드였던지라 무함마드가 죽으면서 이슬람의 분열이 시작된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혈통이냐 합의냐
무함마드 사후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가까운 친척이었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무함마드의 뒤를 이어 이슬람의 지도자가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첫번째 남자 무슬림 개종자였고, 무함마드를 키운 삼촌의 아들이었으며 무함마드의 첫째딸과 결혼 어찌보면 무함마드와 제일 가까운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그가 무함마드를 유해를 수습하며 장사지내는 동안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인 아부 바크르가 혼란을 잠재우고 기습적으로 회의를 통해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이슬람분열이 시작됩니다. 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부 바크르를 인정하지 않았고, 아부 바크르의 지지자 역시 알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알리는 아부 바크르보다는 어려서 일단 알리가 인정하고 한발 물러나는 선에서 어느정도 혼란이 진정됩니다.
이렇게 아부 바크르가 무함마드의 후계자이자 이슬람 지도자인 초대 칼리프가 되었고, 알리는 때를 노리며 잠시 한발 물러섭니다. 그리고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므로 그 반란을 먼저 제압하는 게 먼저였기 때문에 일단 표면적인 갈등은 가라 앉았습니다.
아부 바크르는 칼리프 즉위 2년만에 병을 얻어 사경을 헤메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저번엔 양보한 알리가 무함마드의 뒤를 이을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아부 바크르는 다른 사람을 지목합니다. 자신의 친구이지만 다혈질적이고 난폭해서 사람들이 꺼려하던 우마르라는 사람을 지목하지요.
2대 칼리파 우마르
그는 젊었을적에는 이슬람을 탄압하던 무지막지한 사람이었으나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후에는 다른 비 이슬람인들을 정복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 그가 칼리프가 되려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반대했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알리가 우마르를 지지하여 그는 2대 칼리프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10년의 즉위기간동안 아라비아 반도를 벗어나 페르시아와 동로마제국을 격파하며 이슬람 세계를 넓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넓어진 이슬람은 점점 더 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정복전쟁은 아무래도 많은 적들을 만들게 되었고, 그는 기독교계 페르시아인 노예에게 칼을 맞고 사경을 헤메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부하들이 찾아와서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권유를 듣습니다. 그러나 우마르는 불같이 화를 냈고, 다시 합의를 거쳐서 칼리프를 선출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 일화는 이슬람이 점차 세속화 되는것을 알려주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알리가 무함마드의 가까운 후손이니 그가 후계자가 되는것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그동안은 '신의 계승자는 혈연으로 계승되는게 아니다'라는 논리로 막고 있었는데 점차 이슬람도 기존 아랍의 관습을 따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3대 칼리프 우스만 이븐 아판
2대 칼리프인 우마르의 유언대로 사람들의 합의로 3대 칼리프에 오른 사람은 알리가 아닌 아부 바크르의 친구이자 무함마드의 또 다른 사위 우스만 이븐 아판이었습니다. 알리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또 분노했지만 알리가 이번에도 참고 넘어감으로써 우스만이 칼리프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원래 이슬람을 격렬하게 반대하던 우마미야 부족 출신 사람이었지만 아내들과 이혼하고-두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원래 자신의 부족을 저버리면서까지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무함마드의 딸들과 결혼하며 이슬람의 주요인물이 됩니다.
그는 원래 어마어마한 부자인데다가 사업수완도 뛰어나서 초기 이슬람은 그에게 많은 부분 기대고 있었기에 그의 칼리프 선출은 문제가 될게 없었습니다. 다만 그는 나약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최대한 노력을 했습니다만 그의 즉위로 인해 오히려 이슬람의 분열이 더욱더 가속화 되었습니다. 그는 나약하다는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자신의 부족인 우마미야 부족을 밀어주며 그들의 도움을 받으려 했고, 이는 곧 기존 이슬람들의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자신의 파멸을 불러오게 되었지요.
그는 자신의 일족을 이집트 지방 총독으로 파견했습니다. 그는 이집트인들을 쥐어짜며 폭정을 펼쳤고, 이집트의 무슬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집트사람들은 우스만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사절을 파견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만 알리는 그동안의 우스만의 행보로 인해 우스만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 부탁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어쩔수 없이 이집트 사절단을 만난 우스만은 겉으로는 잘 타일러 보내면서도 뒤로는 감히 자신에게 도전한 그들을 모조리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발각되었고 결국 분노한 사절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그렇게 4대 칼리프로 추대된 알리를 그동안 우스만이 벌여놓은 일을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스만 시대에 우대받고 우마미야 가문이 '우스만이 살해 당한건 알리의 계략'이라며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고, 알리가 부패 혐의로 우스만이 임명한 총독들을 해임하려 하자 모두들 알리의 명령을 거부하게 됩니다.
그렇게 이슬람은 내전에 빠지게 됩니다. 알리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아내이자 알리를 극도로 혐오 했던 아이샤에게 접근했고, 아이샤를 앞세워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일이 너무 커졌다는 것을 느낀 아이샤와 알리는 모두 조심스럽게 협상에 들어갔으나 이미 감정의 골이 깊게 파인 상태라 협상이 진행 되는 동안 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투가 벌어졌고 알리를 따르던 사람들의 군대가 아이샤의 군대를 격파합니다.
한편 우스만의 친척이자 시리아 총독이었던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피안은 알리가 우스만을 죽였다고 우스만 지지자들을 선동하며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는 우마미야 친족들과 연합하여 알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칼리프라고 칭하게 됩니다. 그렇게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이 시작됩니다.
알리를 따르는 시아파 , 권위를 따르는 수니파
알리는 무아위야를 궁지까지 몰아붙였으나 무아위야가 기지를 발휘해-그들이 신성시하는 쿠란을 창끝에 달았다고 합니다-겨우 궁지에서 벗어납니다. 계속된 내전에 지친 알리는 무아위야와 협상을 했고, 무아위야는 그런 알리의 약점을 파고들어 유리하게 협상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자 오히려 알리의 추종자들이 너무 관대하게 협상해줬다 하며 알리에 대해 실망했고, 급진적인 사람들은 알리에게 하야를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알리는 그런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강경파가 그를 암살하면서 알리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알리 사후 무아위야는 칼리프를 차지했고, 그가 죽을때 칼리프를 자신의 아들에게 넘김으로서 완전히 세속화 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수니파들은 따르게 되었고, 시아파는 반발해가며 탄압받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알리와 관련된 문제로 인해 수니파와 시아파는 분열하게 되었으며, 아직도 그 감정의 골은 깊다고 합니다.
이슬람 대부분이 따르는 수니파와 소수지만 정통을 주장하는 시아파. 뉴스에서 수니니 시아니 하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알아가면서 그들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여러 복잡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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